낯선 땅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동양인은 참으로 희귀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가까워 유럽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백인들과의 어울림이 더 자연스러웠던 그들이었다. (물론 아픈 역사에서 오는 고통도 있다.)
그럼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 늘 좋은 마음으로 대하려 했다. 그렇게 지내니 현지인들과 빠르게 가까워지게 되었고,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종종 만나면 안부 인사를 나누며 가지고 있는 것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물론 동등한 관계에서 말이다.
‘탕가’라는 지역에서 유치원을 짓는 일에 함께 동참하게 된 적이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었던 ‘아루샤’와는 거리가 상당했다. 차로 12시간이 꼬박 걸리는 거리를 몇 번이나 오가기를 반복했다. 그렇다 보니 그곳에 갈 때면 며칠을 머물러야 했다. 낯선 지역이기에 숙박하기 좋은 곳을 정해 이용하다 보니 그곳에 일하는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한 호텔(한국의 모텔)의 지배인이 있었는데 이분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우리를 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하셔서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갑자기 한국말을 하시는 것이었다. 중국어를 하면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어를? 의아한 표정으로 어떻게 한국어를 하실 수 있냐고 여쭤보니 젊은 시절 북한에서 유학 생활을 하셨단다. 알고 보니 탄자니아는 과거 공산권 국가였기에 북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하셨다. 듣고 보니 말투가 좀 이북스타일이었다. 그래도 한국어로 인사하고,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음에 신기하고, 반가웠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한국어를 많이 잊었다고는 하나 그마저도 유쾌한 시간이었다.
또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다. 항상 티브이에서만 봐왔던 흑인 아이들의 새하얀 눈동자를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들 말이다.
‘땡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은 이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찬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저 예쁜 눈이 아니었다. 세상을 예쁘게 비추는 눈이었다. 늘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던 나에게 세상을 어떻게 비출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던 눈이었다.
물론 종종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란 ‘실수’를 끊어내어 ‘실패’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성장의 과정일 뿐.'
‘저들의 친절함과 순수함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무례함도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