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의 삶은 분명 팍팍하다. 하루 먹고사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그들의 삶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경제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눈에는 말 그대로 ‘불쌍한’ 삶이다. 그리고 물이 없어 아껴 사용해야 하는 것과 수시로 정전되는 상황도 그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물과 전기였다. 수시로 부족한 물과 자고 일어나면 끊어진 전기로 인해 적응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한 달 급여는 우리나라 돈으로 15만 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물가가 저렴하기에 가능할 것 같지만 아프리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저렴한 것도 아니다.
그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웃음으로 가득했다. 마치 어린 시절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살았던 시절처럼 말이다. 딱지와 구슬이 뭐길래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양 으스대며 살았을까? 근데 그때가 참 그립다. 매일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를 다시 보는 듯했다. 공 하나에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며 웃음 짓는 그 모습과 하교하는 길가에서 꺾은 나뭇가지로 친구들과 뛰노는 모습들 말이다.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동화 속의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 이야기만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삶이길 바랐다. 철이 들지 않은 모습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살고 싶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잠시나마 되찾게 되었다.
한 번은 ‘탕가’에서 해수욕장에 갔다. 탕가는 해안지역이기에 우리나라처럼 해안가에 모래사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현지인들은 수영하며 축구도 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곳은 솔직히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은 물론이고, 흔한 음식점도 없었다. 그런데 어딜 가나 시끄러웠다. ‘웃음’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어대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동화되었고, 나도 같이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휴식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바닷가 이야기는 잔지바르 편에서 더 하도록 하겠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첫날 먹었던 바나나 죽과 함께 서민들이 많이 즐겨 먹는 ‘우갈리’라는 음식이 있다. 이 음식은 옥수수를 말린 뒤 갈아서 만든 가루를 푹 찜기에 찌면 쫀득한 반죽과 같이 생긴 음식이 된다. 이것을 먹을 땐 손으로 쪼물딱 하면서 찰지게 만든 뒤 다른 반찬과 함께 먹는다.
탕가에서 아루샤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 우갈리를 먹었다. 숟가락 대신 그들과 같이 방식인 손으로 먹었다. 옥수수라기에 옥수수 맛을 기대했으나 실상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전분 맛이라고 해야 할까? 텁텁하진 않았는데 ‘이걸 어떤 맛으로 먹지?’ 하는 나의 마음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어려서부터 먹는 그들만의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기에 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하루의 양식이었다. (아쉽게도 우갈리 사진은 없다.)
아프리카에서 자국 음식 외에 대부분은 서양식이었다. 큰 도시에는 다양한 음식이 많이 있지만 내가 머물렀던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 음식점은커녕 한인 마트도 없었다.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식품들이었고, 종종 중국 식품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 음식점을 찾아가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자주 가던 중국 음식점에서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음식을 주문하고 인내의 인내를 거듭하여 음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맛이 좀 이상했다. 당시 주문했던 모든 음식에 유독 짠맛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먹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다가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서빙만 하기에 아는 것은 없었고, 결국 요리사에게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원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출근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옆에서 서브 역할을 하던 직원이 요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엥?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요리사가 없으면 주문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의 맛을 가진 음식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주방장이 출근하는 날 오라는 것이었다.
‘하하하’
이곳은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의 방식을 혀로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살아간다. 물론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있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없으면 대체한다. 그마저도 없으면 없는 대로 한다. 아마 음식 재료가 부족했다면 재료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낯설었던 이들의 삶의 방식이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쿠나 마타타’
부족함을 불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족함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삶의 태도였다. 이것은 몇 달간 반복적으로 이어졌던 물 부족과 정전의 상황에 불편함이나 짜증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늘은 물이 부족하구나, 전기가 부족하구나’라고 여기며 넘어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했다.
음식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이라고 매번 음식을 먹을 때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이웃들과 웃으며 먹는 즐거움 대신 한 끼의 서러움에 복받쳐 하루를 견뎌내는 생수와 같았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빈민국 중 하나였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기에 기억조차 흐려져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라지만 여전히 물을 아끼고, 밥 한 톨도 아까워하는 부모의 세대를 보고 있자면 그 흔적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음을 느낀다. 한국 음식에 서려 있는 이야기는 그 시절을 대변한다.
‘그렇게 나는 음식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