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축복의 땅’이기도 하지만 지독한 ‘가뭄의 땅’이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우기에 종종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내린 비로 아무것도 없었던 사막과 같았던 땅속에 숨어 있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물이 없어 가시나무만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그 땅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른 풀로 채워진 것이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그 땅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픔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일어나듯 그 땅은 훨씬 더 심각했다. 땅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가시나무뿐이었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땅은 움푹 파여 물길을 만들었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얼마나 파일까 싶지만 막상 보면 조금 겁난다. ‘아, 저 정도면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내린 물을 담을 시설이 없었다. 물이 부족하지만 차고 넘치는 물을 담아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우기에도 여전히 물이 부족했다.
‘그렇게 아프리카는 다시 말라가기 시작했다.’
우연히 우물을 파는 이들과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어느 지역에 땅을 팔지 고민한 끝에 유치원을 지었던 ‘탕가’ 지역에 파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낯설지 않은 지역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사실 난 그곳에서 자리 지키는 것 외에 한 일은 없었다. 물론 그 일을 감당하는 현지인들의 말동무가 되어 조금이나마 동참하려 했다.
첫째 날, 탕가가 꽤나 먼 지역이었기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팀은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할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너무 무더운 날씨에 습도가 매우 높아 모두가 힘들고 지친 상태로 시작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해 주었다.
둘째 날, 아침부터 시작된 우물 파기! 위치를 정하고, 큰 장비를 옮겨 땅을 팔 채비를 마쳤다. 사실 그 땅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주변에 시멘트 공장이 많이 있었다. 동시에 물을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단단히 굳은 땅을 두드리며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그 마을은 순식간에 엄청난 소음과 진동 그리고 먼지로 뒤덮였다. 뿌연 먼지 속에서 이곳을 바라보던 주민들의 눈에는 기대와 소망 그리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정말 물이 나올까?’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의자에 앉아 그들과 함께 ‘한 곳’을 응시한 채 하루를 보냈다.
셋째 날, 60m 정도 팠을까? 땅을 두드리고 파기를 반복하다가 물에 젖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흙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일 만에 본 것이었다. 이 일을 반복하는 이들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처음 참여한 나와 그곳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지휘자는 냉철했다. 좀 더 깊이 내려가자는 지휘자의 판단에 더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이 더 많이 나올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시 마른 흙만 나올 뿐이다. ‘괜찮겠지?’라는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를 보냈다.
넷째 날, 80m 지점에서 다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길이 제법 강했다. 지휘자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좀 더 깊은 곳까지 파고 싶었으나 이미 충분히 깊이 들어갔고, 더 깊이 파서 지금보다 더 좋은 물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멈추기로 결정했다.
이젠 파티의 시간이다. 하늘로 솟구치는 물을 맞이할 시간 말이다. 마을의 주민들을 불러 함께 이 기쁨을 나눴다. ‘감사’와 ‘감격’의 순간이었다. 진정한 ‘흠뻑쇼’였다. 온몸이 물에 젖고, 신발이 진흙에 파묻혀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 없이 즐기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다섯째 날, 수도와 전기 스위치를 설치했다. 기념패를 걸고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나와 지인은 그곳에서 주말을 보낸 뒤 아루샤로 가는 일정으로 인해 우물 팀의 가는 길을 먼저 배웅하고 그곳에 남았다.
우물에 관한 모든 일정은 끝났다.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이벤트였던 이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설렘과 기다림,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던 그 시간만큼 나에게 남겨준 메시지도 강렬했다.
‘기다림’이 주는 ‘지침’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은 ‘간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