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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네 번째!

리차드 쥬얼 (Richard Jewell)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미국 131분

개봉 2019년 12월 13일 (미국)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 Opening 오프닝

이 영화는 198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작한다. 정확한 일시와 구체적 장소는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린다.

주인공 리차드. 약간 통통한 체격에 단정하게 다듬어진 짧은 머리, 그리고 깔끔하게 내려앉은 콧수염. 마치 교외 어느 마트 계산대 직원처럼 너무도 평범하고 무해해 보이는 이 남자는 변호사 사무실의 비품 담당 직원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작은 연못 속에 잠긴 돌멩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무거운 꿈과 선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차드가 가진 것은 거창한 학위도 화려한 스펙도 아니다. 대신 그는 탁월한 관찰력과 놀라운 기억력,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런 점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바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브라이언트 변호사다. 브라이언트는 필요한 물건을 미리 챙겨놓는 그의 세심함에 은근히 감동받는다. 작은 호의와 무심한 배려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둘 사이엔 묘한 동지애 같은 것이 자라난다. 그렇게 점심시간이면 두 사람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락실 한 구석, 총 게임 앞에 나란히 선 두 남자. 서툴지만 진지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리차드의 모습은 마치 어른의 옷을 입은 소년처럼 사뭇 어색하지만 손 끝만큼은 정확히 타깃을 맞춘다. 그리고 그 순간 리차드는 작지만 확고하게 말한다.

지금 제가 하는 건 제 미래직업을 위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죠. FBI 같은 첩보기관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누군가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 리차드는 그 꿈을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의 눈빛엔 분명한 진심이 깃들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차드는 보안업체로 새 직장을 얻는다. 이제 그는 조금씩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한다. 그 출발점에서 브라이언트 변호사는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네며 진심을 담아 당부한다.

나중에 경찰이 되면 절대 타락한 경찰은 되지 말아요. 알겠죠?
... ...
작은 권력이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어요.

그 말은 마치 오래된 경고처럼 혹은 예고된 불행의 그림자처럼 리차드의 등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오프닝은 단순한 인물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리차드 라는 사람의 본질을 그리고 이 영화가 던지려는 묵직한 질문—책임과 권력에 대한 물음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새긴다. 결국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괴물로 오인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오해의 진원지가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가에 대한 영화이다.



2. 올림픽과 군용 가방

1996년, 애틀랜타. 도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들떠 있다. 축제의 기운은 번쩍이는 불꽃놀이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짙게 채워지고 그 열기 속에서 리차드는 또다시 새 직장을 얻는다. 이번엔 한 대학 캠퍼스의 보안직원. 하지만 그의 지나친 성실함과 규칙에 대한 집착은 학생들과의 마찰로 이어지고 결국 그는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럼에도 리차드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엔 올림픽 보안요원으로 자원한다. 이것만 잘 해내면 언젠가는 진짜 경찰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어딘가 소년 같고 또 어딘가는 너무 진지하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그는 생의 무게처럼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날, 올림픽 축하 공연이 한창인 센테니얼 공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드는 그 광장 한가운데, 낡은 군용 가방 하나가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쩌면 누군가 들뜬 마음에 깜빡 잊고 두고 간 평범한 분실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그럴 리 없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동선과 표정을 관찰해 온 그의 직감은 묵직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그는 지체 없이 원칙대로 움직인다. 감식반을 부르고 관객들을 대피시키자고 요청한다. 이곳은 올림픽 축하공연이 한창이 야외 공연장이며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911로 걸려온 한 통의 신고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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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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