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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피닉스의 1인 고독극

영화 her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미국 125분

개봉 2014년 05월 22일

감독 스파이크 존즈 Spike Jonze


1. Opening 오프닝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4년 작 <그녀(Her)>의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을 낯선 시대의 문턱으로 조심스레 안내하는 하나의 정교한 감정 초상화와 같다. 스크린을 채우기 전에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인간의 감성과 기계의 매끄러운 효율이 기묘하게 뒤섞인 듯한 미니멀한 전자음의 앙상블이다. 이는 곧 텅 빈 고독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이 세계의 얄팍하고도 불분명한 경계를 선포하는 무드음악처럼 기능한다. 이윽고 따뜻하고 채도 높은 톤의 화면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 주인공의 얼굴은 그가 속한 세계의 파스텔빛 인테리어와는 묘하게 불화하며 일련의 정서적 단절을 예고한다.


​시어도어의 직업은 '아름다운 손편지'를 대필하는 작가, 즉 타인의 진심을 대신 제조하는 회사 직원이다. 그는 컴퓨터에 대고 진지한 얼굴로 타인을 위한 감정을 속삭인다. 그의 말은 곧 정성스러운 손 편지가 되어 프린터로 출력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휘발되며 즉석에서 가볍게 만들어지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고자 하는 것이 '정성과 진심의 공유'라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 의식을 관통한다. 시어도어는 타인을 대신해 가장 밀도 높은 애정을 제조해 내는 이 시대의 감정 노동자이지만 정작 그의 일상과 내면은 자신이 속사이던 달콤한 문구와는 지독하게 동떨어져 있다. 그는 늘 우울한 표정에 무기력해 보이며,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는 철저히 고립된 채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메일을 확인하고 음악을 듣고 메시지를 보낸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습관적으로 늘 하는 게임을 하며 가상세계에 침잠하는 그의 모습은 이토록 아름답고 편리하게 정돈된 미래 도시 속에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근원적 소외와 고독을 시각적으로 웅변한다.

이 영화의 주요 컬러는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몰아치는 바람과는 정반대의 표정을 띠고 있다. 화면을 채우는 세트의 색감, 피부에 스쳐 가는 듯한 옷의 파스텔 톤, 심지어 인공조명조차도 따뜻한 빛을 머금고 반짝인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틈에 얹힌 얇은 장식처럼 어딘가 표면적이고 불안정하다. 영화는 이 상반된 질감을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화려함 아래 감춰진 깊은 고독을 조용히 드러낸다. 빛으로 감싸도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허를, 그 미장센의 숨결 사이로 서늘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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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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