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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았던 영화 열한 번째!

라빠르망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프랑스/스페인/ 이탈리아 116분

개봉 1997년 03월 22일

감독 질 미무니 Gilles Mimouni



1. Opening 오프닝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의 한 보석 가게에서 시작한다. 보석점 주인은 진품과 모조품의 차이에 대해 남자 주인공 막스(뱅상 카셀)에게 얘기해 준다.

한번 보세요. 단순하지만 기품 있고, 순수하지만 비범하죠. 반면 이 제품은 화려하고 날카롭죠. 잘못 만지면 다칠 수도 있어요.

이 단순 명료한 설명은 단순히 보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집착의 결을 가늠하는 은유처럼 기능한다. 사랑과 집착, 기억과 망상, 순수함과 위험은 그렇게 처음부터 같은 테이블 위에 놓인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의 파도와 기억의 미로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사랑과 집착을 거울처럼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한 편의 비극적 드라마이다.

막스(뱅상 카셀)는 겉보기에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이다. 뉴욕의 바쁜 회의실, 도쿄로 향하는 비행 일정을 앞둔 그는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한 목소리에 의해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리자(모니카 벨루치)
아무런 예고 없이 사라졌던 옛 연인. 눈앞을 스쳐간 실루엣, 닿지 못한 얼굴, 그러나 확신처럼 다가오는 감정. 실루엣 너머의 목소리를 급하게 쫓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녀가 흘리고 간 호텔 열쇠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그가 쫓는 건 단순히 한 여자의 행방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마무리하지 못했던 감정의 마지막 페이지이다. 그렇게 거짓말로 유예되는 미래는 불안해지고 과거의 진실 찾기는 생각보다 길어진다.

질 미무니 감독은 첫 장면에서부터 시선의 구조를 설계한다. 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지금과 과거 사이의 유리벽이 존재하고 그 유리 너머에서 감정은 반사되고 굴절된다. 카메라는 절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항상 틀어진 각도, 열린 틈새, 거울 속 투영.
우리는 이 이야기를 곧장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너머 혹은 기억의 잔상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2. 운명의 여인, 리자

2년 전 파리의 어느 허름한 가전제품 수리점, 푸른빛이 감도는 브라운관 속. 그 속에서 막스는 우연히 한 여인의 잔상을 본다. 수리 중인 카메라에 남겨진 짧은 영상. 그 영상 속 그녀는 별다른 표정도 대사도 없는데 막스는 그 이미지에 단번에 붙들린다. 검은 중단발머리, 음영 깊은 눈매와 도톰한 입술. 그녀의 고요한 얼굴에는 어떤 소란보다 큰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막스의 삶 전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리자. 그는 길에서 그녀를 우연히 마주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따라 걷기 시작한다. 이 만남은 두 사람의 것이기 이전에 일방적인 시선의 기원이다. 막스는 리자를 끝내 마주 보지 못한다.
언제나 조금 떨어져 있고 언제나 먼저 바라보고 언제나 말을 건네지 못한 채 망설인다. 이렇듯 이 사랑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침범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시선의 문제가 등장한다. 그래서 처음 그와 구두가게에서 말을 섞을 때 리자는 불쾌감을 드러낸다.

늘 사람을 미행하나요?
… 미안한 척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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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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