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
끝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삶은 무의미한 삶인 걸까? 그 질문은 늘 내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 매달려 있었다. 어느 여름의 오후 창가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빛처럼 가슴에 스며든 한 편의 영화, 말릭 벤젤룰의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은 그 질문에 대한 내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는 한때 미국에서 주목받지 못한 무명 가수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좇는다. 그는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알지 못하는 사이 남아공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가 남긴 노래들은 불의와 억압에 맞서던 젊은 세대의 여름밤처럼 뜨겁게 울려 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미국의 소도시에서 노동자로서의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음악이 가진 힘이 단지 인기와 음반 판매수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차갑게 식어버린 녹음실의 벽에 갇혀 있던 음반이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타인의 삶을 위로하고 흔드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차원의 성공이 된다.
로드리게즈는 생계를 위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갔다.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 소박한 식탁을 마주하는 삶. 영화는 그것을 비참함이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존엄한 일상의 일부로 비춘다. 그는 자신이 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 단순한 태도에서 나는 삶의 다른 결을 보았다. 빛나는 순간만이 인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늘진 자리에서도 제 나름의 선율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삶이 힘겨워 무너질 듯했던 시절, 나는 자주 영화와 글쓰기에 의지했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꿈을 내게 선물했다. 어두운 극장은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였다. 그리고 글쓰기는 상처 난 마음을 봉합하는 치유제였다. 모니터 위에 단어를 새겨 넣을 때마다 흩어진 감정이 질서를 얻었고 무너진 내면이 조금씩 일어섰다.
<서칭 포 슈가맨>의 OST 역시 내 가난하고 지친 일상에 깊은 포옹이 되어 주었다. 낡은 통기타의 음색, 낮고 따뜻한 목소리, 소박한 선율 속에 묻어난 희망의 결. 그것은 화려한 장식 대신 늦여름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단비처럼 위안을 전해주었다. 성공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순간 음악은 이미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글쓰기에도 똑같이 다가왔다.
내 글쓰기의 흔적이 비록 초라한 결실을 맺을지라도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또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처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사랑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눈앞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설령 누군가의 눈에는 궁핍해 보일지라도, 내 소박한 문장과 기록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맞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안타깝게도, 영화 속 주인공 Sixto Rodriguez는 2023년 8월, 여름햇살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소나기가 내려주길 잠시 기도했다. 그는 살아생전 거대한 부나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래는 이미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불어오고 있다. 떠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선율, 그것이 바로 그가 남긴 삶의 진짜 의미였다.
인생은 종종 실패와 좌절이라는 이름표를 우리 어깨에 걸어둔다. 그러나 그 무게가 곧 삶의 무의미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름의 태양이 뜨거운 만큼 그림자가 깊듯, 실패라 불린 삶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음악이 그러하고 글쓰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성공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더 이상 그것을 결과의 숫자나 외적인 명예로만 환원하지 않는다. 성공이란 어쩌면 여름날 한순간 스쳐가는 바람 같을지도 모른다. 오래 붙잡을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것. 그러나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아닐까.
여름 한낮,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노래와 섞여 들어올 때, 나는 깨닫는다. 실패라 불렸던 나의 날들도 결국은 한 편의 노래였음을. 비록 조용하고, 때로는 가늘게 흘러갔을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내게 가르쳐 준 위안과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행운처럼 찾아온 성공에 기존의 삶을 내팽개쳐 버리지 않는 것. 그저 지나가는 버스처럼 관망하며 이것 또한 흘러가는 인생의 한 조각임을 받아들이는 것.
이제 땡볕더위도 물러가고 소나기가 내리면 싸늘하게 식은 공기너머로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Sixto Rodriguez의 Sugar Man의 선율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려 봐도 좋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