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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기적의 체온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by 달빛바람

기적의 체온


​서울의 겨울은 해마다 조금씩 낯선 표정을 들고 찾아온다. 강남 중심가의 3D 전광판이 첨단 기술을 뽐내고 유명 백화점의 조명등이 밤거리를 밝힐 때 우리는 걸음을 잠시 멈추지만 사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은 그러한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내 코트 주머니 속 당신의 손이다. 도시의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예리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겨울의 결이 놀랍도록 부드러워진다. 내가 곤 사토시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속 세 아버지의 이야기에 이토록 끌리는 것도 결국 이런 체온의 문제 때문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건 최첨단 기술이나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적이며 사소한 눈인사와 악수 같은 온기일 것이다.


​가장 낮은 곳,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 피어나는 기적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착한다. 서울의 겨울은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그 낯선 모습 아래 오래 머무는 것은 세상의 소란이 말갛게 가라앉은 이후의 고요함이다. 바쁜 걸음으로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문득 자신의 마음의 떨림을 듣는다. 화려한 불빛 속에서조차 우리가 잊고 지내는 단어인 '기적'은 사실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어깨에 닿는 체온, 오래도록 남는 눈빛 하나, 별다른 이유 없이 건네는 부드러운 말의 결 같은 것들. 대단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삶은 그런 미세한 온기 하나를 연료 삼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들뜨지 않은 마음의 온도, 조용하지만 깊게 번지는 그 따뜻함이야말로 길고 긴 겨울을 견디게 만드는 인간적인 숨결이 된다.



필리핀 일로일로, ‘가족’이라는 단어의 확장

1999년 연말, 세상이 뉴밀레니엄이 온다고 떠들썩하던 그때 나는 필리핀 일로일로(Iloilo)에서 생애 가장 인상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훅 밀려오던 열대과일 냄새들과 낯선 체취들. 잘 익은 망고와 파파야가 뒤섞인 짙은 단내와 강렬한 햇살은 그곳의 첫인상을 오래도록 박아두었다. 해가 지고 나면 서늘한 여름밤의 공기가 피부에 천천히 달라붙었고, 거리에는 트럭을 개조한 알록달록한 지프니들이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차체에 그려진 화려한 무늬와 반짝이는 장식들, 그리고 기사들이 손끝으로 만들어내던 독특한 엑센트가 섞인 호객 소리.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거리마다 메아리처럼 튀어나왔고, 그것이 이 도시만의 박동처럼 들렸다. 그 모든 감각이 내게 익숙한 세계를 한 겹씩 벗겨내며 이곳을 다른 꿈이 가능해지는 공간으로 느끼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의 성탄절은 지금도 ‘기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의 원형이 되었다.

그 집에 모여 살던 네 명은, 누가 봐도 전통적 가족의 틀에서 비켜나 있었다. 콧수염이 쌍둥이처럼 잘 어울리던 중년의 남남 교수 커플이(아마도 게이 커플이었을 것이다. 집안 곳곳에 다정하게 추억을 공유한 사진들이 있었다.) 집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그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키가 훌쩍 180을 넘는 모델 같은 조카가 자연스레 한 축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었지만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며 집안의 살림을 묵묵히 도맡던 헬퍼는 특유의 환한 웃음 한 번으로 하루의 공기를 부드럽게 데우곤 했다. 그리고 그 다채로운 구성원들 사이에 이국의 공기에 조금은 어색하게 섞여들던 남자 고등학생 두 명, 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작은 집 안은 뜻밖의 온기를 품었다. 오래된 장식으로 꾸민 트리, 가게에서 급히 사온 작은 케이크, 특유의 악센트가 섞인 말로 서툴게 건네던 축하. 그 순간만큼은 여섯 명의 조합이 ‘이방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같은 밥을 나누던 식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툰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 축하를 나누었고, 그때 오간 판단 없는 시선과 말보다 먼저 다가왔던 이유 없는 온기가 그 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날의 따뜻함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한 번도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밤은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서로의 배경도, 상처도, 꿈도 달랐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행위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절망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난 '책임감'과 '사랑'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을 보았을 때 영화 속 신주쿠의 뒷골목 풍경은 자연스레 일로일로의 그 따뜻했던 밤과 포개졌다. 이 영화는 홈리스인 세 주인공,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전직 경륜 선수 긴, 사춘기의 회한으로 가출한 미유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트랜스젠더 나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각각 버려진 존재로 실상 서로 연대해야 할 그 어떤 소속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아기 '키요코'를 발견하면서 이들의 길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아기를 품고, 젖병을 물리고,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는 순간부터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감정, 즉 '책임감'과 '사랑'이 다시 손끝에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기의 생명 앞에서 이들은 자신들을 버린 세상의 부모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로 이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뜨거운 의무감을 공유한다.
​아기를 지키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긴은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다시 느끼고, 미유키는 자신이 스스로 밀어냈던 가족의 사랑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는 자신 안에 얼마나 크고 헌신적인 모성애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영화의 절정에서 한 인물이 아기를 구하기 위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지는 장면은 그들의 삶에서 기적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삶의 가장 낮은 곳, 춥고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에서 피어난 작은 온기가 도시의 냉기를 흔들고, 결국 이 세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영화 속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준 따뜻함의 대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의 겨울에도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본다. 기적은 거대한 사건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건네는 마음의 여백, 아이의 손을 데우는 입김, 그리고 살을 맞댄 온기. 이러한 사소한 열기들이 중첩되어 비로소 혹한을 견딜 생의 온도가 된다.


화려한 트리의 불빛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마음에서 번지는 온기라는 사실, 어쩌면 그것이 이 계절이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는 가장 단단한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밤이 오늘보다 조금 덜 춥기를, 겨울을 건너는 고단한 걸음걸음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기적이 당신에게 스며들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숨을 고르듯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당신의 계절 또한 쉽게 식지 않는 온기로 천천히 채워지기를. 그 온기가 당신을 오래 지켜주기를 바라며...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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