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만이 선물을 받느니라.
태초부터 나에게 산타는 없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아주 철저한 교육의 결과였다.
아직도 무엇이 그렇게까지 확고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수의 탄생을 흐리는 모든 존재는 우리 아버지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 산타는 그중에서도 꽤 큰 대역 죄인이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아이였다. 너무 좋아서, 사람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가 슬슬 겁을 먹을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하지만 두 번의 출산과 전신마취를 한 수술은 나의 몇 안 되는 자랑을 슬그머니 가져가 버렸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도망치는 기억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쯤에서 서두는 접어 두고, 나의 이 유난스러운 기억력은 산타와 나의 첫 이별의 순간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바야흐로 내가 여덟 살이던 해, 성탄절 예배가 있었다. 단 위에 선 목사님은 어린이들을 향해 말했다.
“어린이 여러분, 집중해서 들으세요.”
그리고 그분은 설교 중에 산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산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산타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12월 25일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이날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지 산타가 선물을 주는 날이 아닙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혹시 산타를 믿고 있다면, 그건 부모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렇게 진지한 설교를 한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설교로는 부족했는지, 집에 와서 나를 앉혀 놓고 재방송을 해 주셨다.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선물을 못 받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서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그래서 지금도 나는 산타가 없다고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산타는 당연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바로 산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년 기꺼이 산타가 된다.
열네 살이 되었음에도 산타는 절대 없을 리 없다고 믿는 리아와 누나 따라 덩달아 믿는 리오 덕분이다. 선물을 고르는 이 계절이 나에겐 가장 기쁘다.
리아가 열 살 무렵, 조심스럽게 물어온 적이 있다.
“엄마, 산타 진짜 있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있다고 믿으면 죽을 때까지 있는 거고, 없다고 의심하면 그때부터 없는 거야.”
그날 이후 리아와 리오는 마음을 단단히 정했다. 아마 내가 죽는 날까지 산타를 믿을 작정이다. 요즘은 받고 싶은 선물의 상세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 주며 산타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다. 나와 산타의 친분이 꽤나 두텁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3년 전쯤, 결국 구하지 못한 선물 대신 다른 걸 줬더니 리아는 리오에게 말했다.
“아마 코로나 때문에 산타할아버지가 입국을 못 하신 것 같아.”
그러면서 애써 나를 위로했다.
요즘 산타는 루돌프 대신 국제 택배를 이용한다.
그래서 최소 2주 전에는 준비해야 한다며, 본인도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올해도 열심히 선물을 고른다.
그러니까…
산타는 있다.
적어도, 우리 집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