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파티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

by 소담


나의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몇 해를 거듭해 본 결과, 10월 초는 너무 이르고 10월 말은 늦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는 10월 중순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10월 중순이 되면 제일 먼저 선물을 준비한다. 음식은 미리 준비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선물을 고르고 주문하고 만들기까지 한 달여가 걸린다. ‘무엇하느라 그리 오래 걸릴까’ 싶지만, 직장을 다니며 디테일까지 챙기다 보면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커튼부터 식탁보, 앞치마까지 만들겠다고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하면 주말 이틀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기성품을 사려해도 마음에 꼭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주문과 반품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선물 준비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이면 집을 꾸민다. 위쪽 수납장에는 큰 리본을 두르고,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일찌감치 꺼내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한다. 화이트나 골드 리본이 거실을 채우는 순간, 집안 전체가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한 달여가 남으면 묵고 갈 손님들을 위해 대청소를 하고 이불들을 세탁한다. 가족의 아들딸 친구들이지만, 내게는 귀한 손님들이다.


12월 초가 되면 드디어 음식을 시연해 본다. 가족회의에서 선정된 메뉴들을 완성해 맛을 보고, 음식이 결정되면 주문해야 할 일정과 품목을 꼼꼼히 체크한다. 23일에는 전처리할 수 있는 것들을 손질해 두고, 24일에는 재료들을 메뉴별로 소분해 바로 요리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러면 파티 당일에 틈이 생긴다. 그 틈이 있어야, 뜻밖의 웃음도 들어올 수 있다.


파티 당일엔 커플로 요리를 맡긴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 딸과 딸의 남자친구, 조카들까지 두 명씩 짝을 지어 요리하면 웃음이 많아지고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튀어나온다. 나는 커플별로 어떤 요리를 하면 되는지 설명해 주고, 그들이 즐기는 모습을 감상하면 된다. 각자의 요리가 끝나면 플레이팅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작은 즐거움도 선물하고, 나는 사진을 부지런히 찍는다.


그날의 부엌은 늘 조금 어수선하다. 오븐 앞에 줄이 생기고, 도마 위에는 양파 껍질이 쌓이고, 누군가는 소금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엄마, 이거 맞아?” 딸이 소스 병을 들고 흔들며 물으면, 나는 한 번 맛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거. 근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안도한 얼굴이 되고, 다시 각자의 냄비로 돌아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의 앞치마 끈을 묶어 주고, 다 된 접시는 조심조심 식탁으로 옮겨진다. 그 짧은 왕복이, 한 해를 다정하게 옮기는 일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물론 포틀럭 파티로 진행할 때도 있었다. 서툰 솜씨로 서로가 자신 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면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그렇게 각자의 접시가 테이블 위에 모이면,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으며 한 해를 보내는 감회를 나누고 새해의 소망을 조용히 다짐한다.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파티’라는 단어는 내 마음을 다 담지 못한다. 요리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다음 해의 파티 콘셉트와 드레스코드를 의논하는 시간도, 이 파티에서 배웠으니 말이다.


근사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하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우리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을 꽃피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생각처럼 안될 때도 있다.

파티에서도 딸기에 산타 수염 흉내를 내려고 생크림을 얹었다가 다 흘러내려 엉망이 되는 날도 있었다.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서 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안정한 날과 확신이 드는 날을 오가며 꾸준히 견뎌내다 보면, 결국 성숙이라는 열매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나는 매년 이 길고 힘든 과정을 반복한다. 파티가 단순히 먹고 웃는 데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함께 성장하는 시간, 그 여정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란히 걷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하다.


다만 가끔은, 이 모든 준비를 내가 지나치게 ‘잘 해내려’ 애쓰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리본이 비뚤어져도, 접시가 하나쯤 모자라도, 사진이 흔들려도 괜찮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체크리스트를 펼치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마도 그건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아직도 가장 부지런하기 때문일 것이다.


늘 처음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시작하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된다. 누구나 끝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더 신중해질 수 있고, 그래서 더 용감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자신을 믿고 내디딘 걸음걸음이 어느 순간 상상도 못 한 선물로 안길 것이다.


나에게 선물은 결국 맛있는 음식도 예쁜 사진도 아니라, 함께 준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해마다 다시 꺼내어 따뜻하게 데우는 일. 나는 아마, 그 일을 오래도록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