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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요즘 조금 덜 바쁩니다

'초당 1000km'면… 이제 쉬실 때도 됐죠

by 플루토씨

어릴 때는 산타할아버지를 많이 기다렸어요.
크리스마스이브 밤이면 괜히 일찍 누웠다가, 또 괜히 눈을 뜨고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으면, 뭔가 발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거든요.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살았죠.

산타는 그냥 ‘어린이 전용’ 이야기처럼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산타루돌프까지 기다립니다.
저도 모르게요.


그렇다면 산타 할아버지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하룻밤에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릴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생각인데 말이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산타를 안 믿게 되는 일이 아니라…
산타의 야근을 걱정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제 직업병이 나옵니다.
그래서… 산타는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요.

아이들은 절대 안 하는 생각인데, 어른이 되면 하게 되더라고요.


산타가 하룻밤에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가정해 봅니다.

아이 있는 집만 대충 잡아도 1억 가구쯤 된다고 치죠.
그리고 산타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초로 바꾸면 86,400초입니다.

그러면 계산이 이렇게 됩니다.


대충 계산해보면… 1초에 1,100집을 들러야 합니다.

여기까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습니다.
“산타니까 가능하겠지요” 하고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근데 진짜 문제는… 이동 거리더라고요.

지구를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다 돈다고 치면
총 이동 거리가 대충 1억 km는 넘는다고 하더군요.
(지구가 제법 큽니다. 그리고 산타는 정말 많이 움직여야 하고요.)


자, 그러면 속도가 나옵니다.

대략 초당 1,000~2,000km

이걸 시속으로 바꾸면요.

시속 400만~700만 km/h

빛의 속도의 0.3~0.6%

이쯤 되면 이런말이 나옵니다

“아, 이건 그냥 썰이 아니구나.”

비교를 해보면 더 감이 오죠.

소총 탄환: 초당 0.8 km

국제우주정거장: 초당 7.7 km

산타: 초당 1,000 km급


즉,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산타는 ‘아저씨’가 아니라
상대론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천체급 존재입니다.


그래서요.
산타를 믿는 건 “순진한 일”이 아니라,
어쩌면 “물리학을 잠깐 접어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그 정도 양보가 필요하거든요.




산타가 하룻밤에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봤어요.
과학자로 치면 여기서 계산을 시작하겠죠.
이동 거리, 속도, 시간대, 중력까지요.
그런데 계산을 조금 하다 보면 금방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거 꽤 어려운 일이네요.


산타가 지구인들의 동심을 채우는 일은 고난도 작업입니다.
하룻밤에 움직여야 할 거리가 너무 멀고,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거든요.

와이파이도 빠르고요.
산타 입장에선 참 피곤한 계절이죠.


우리 집 아이도 산타를 믿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믿고 있죠.
양말을 걸어두고,
괜히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잠들기 전까지 여러 번 말을 합니다.
혹시 못 들을까 봐요.



저는 그걸 굳이 바로잡지 않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거든요.
산타를 믿는다는 게
사실은 선물을 믿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믿는 일이라는 걸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산타를 쉬게 합니다.
더 이상 하룻밤에 전 세계를 돌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우리가 조금 나눠 맡겠다고요.

그 대신,
아이들 방 불을 끄는 일,
양말 옆에 작은 상자를 놓는 일,
괜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일은
우리가 합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눈이 오면 괜히 밖으로 나가고,
손이 시려도 뭉치고,
완벽하지 않아도 웃고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 번쯤 보여주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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