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은 도망이 아니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by 달빛바람

1. 변두리의 공기,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


연말의 12월은 늘 공기가 한 겹 더 무겁다. 차가운 숨이 폐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올해도 어느새 이리도 일찍 지나갔다는 사실이 먼저 몸에 닿는다. 달력이 알려주기 전에 몸이 먼저 계절의 끝을 알아차린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며 나는 자주 화면을 멈췄다. 장면이 유난히 극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침묵과 표정들이 내 삶의 어떤 시절과 너무 정확히 포개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분명 화면 속에 있었지만, 감정은 오래된 내 시간에서 걸어 나와 나를 붙잡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하던 출근길은 이동이라기보다 하루를 통과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아침마다 같은 방향으로 몸을 싣고, 저녁이면 다시 변두리로 밀려나듯 돌아왔다. 퇴근 후 지하철 객차에 앉아 있던 얼굴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포기와 체념 사이 어딘가에 머문 표정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보게 되는 오래 맡아온 냄새 같은 감정. 말로 배우기 전부터 몸이 먼저 알고 있던 공기였다. 그 냄새는 다른 장소에서도 반복되었다.


새벽 네 시, 경기도 시흥시 한 물류 창고의 형광등 아래서 택배 상자를 분류하던 날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지는 박스를 붙잡다 손끝이 갈라질 때의 통증.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며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던 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속에 얼음 조각이 박히던 감각. 그 시절의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노동으로 겨우 증명하고 있었다. 멈추면 사라질 것 같아서, 쉬지 못한 채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그 모든 시간은 누가 대신 떠안아주지 않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공기는 지금도 겨울만 오면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잊힌 줄 알았던 감각들이 몸의 기억 속에서 다시 호흡을 시작한다.



2. 내가 치워야 할 것들과 신포도


지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다. 카메라 슬레이트 대신 분필을 쥐고, 촬영 스케줄 대신 수업 시간표를 확인한다. 공과금 납부일을 챙기고, 출력이 어긋난 학습지를 다시 뽑고, 집에 돌아와 고양이 사료 그릇을 채운다. 그리고 고양이가 남긴 흔적을 치운다.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일 일들. 하지만 삶은 바로 그런 일들이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꽤 최근에서야 알았다.


염미정의 말처럼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인 삶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내가 싼 똥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선택, 미뤄둔 결정, 책임지지 못했던 말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 돌아와, 내가 치워야 할 형태로 남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그 불쾌함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도망치지 않는 태도, 그 자체가 성숙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염창희가 꿈꾸던 보증금 3억, 월 순익 천만 원의 편의점 점주는 그래서 더 선명하다. 그것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안정과 존엄이 한꺼번에 보장된 세계의 입장권이었다. 나 역시 그런 숫자들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굴려보던 사람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외워버린 숫자들. 하지만 나의 편의점은 늘 유리 너머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끝내 내 것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솝 우화 속 여우처럼 고개를 돌렸다. 닿지 않는 것은 시어서 먹을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신포도는 욕망이 아니라 태도로 바뀌었다. 갖지 못한 것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나는 나를 보호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가치를 낮추는 법을 배웠던 셈이다.



3. 소주병을 내려놓는 법, 해방의 방향


구 씨의 소주병은 그래서 오래 남는다. 그 병은 단순한 술병이 아니라 과거의 과오와 미련을 담고 있는 그릇처럼 보인다. 비우지 않으면 계속 들고 있게 되고, 들고 있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무게. 나 역시 비슷한 병을 오래 쥐고 살았다. 완성하지 못한 영화들, 현장을 떠났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열등감, 스스로에게 던진 실망들. 그것들은 늘 손에 남아 있었고, 내려놓을 타이밍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구 씨가 그 병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해방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방향 감각이라는 것을.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아도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이 있다는 것.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정확히 재는 태도에 가깝다. 더 이상 들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용기, 그 또한 성취의 한 형태였다.


미정이 말한 ‘추앙’ 역시 그렇다. 그것은 상대에게 끊임없는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 태도, 쓸모로 존재를 재단하지 않는 방식이다. 자격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그 말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해방의 언어였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에 가까웠다. 나를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과거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내 몫을 다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끊겨 있던 숨이 다시 이어졌다. 숨을 쉰다는 감각이 오랜만에 현재로 돌아왔다.


해방은 모든 결핍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결핍의 모양을 정확히 알고도 하루를 살아내는 힘에 가깝다.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내가 치워야 할 것을 알고 있는 삶. 그 느리고 투박한 근육이 붙는 과정, 아마도 그것이 해방일 것이다.


12월의 끝자락, 창밖에는 조용히 눈이 내린다. 발치에 잠든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이 작은 생명을 지키는 일, 내일 만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남는 일. 그것이 지금 내 삶의 분수이며 내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내 몫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이유들, 오늘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근거들이다.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신포도를 깎아내리지 않고, 소주병을 내려놓고, 내가 싼 똥을 외면하지 않는 법. 이 겨울이 언젠가 돌아봤을 때, 해방의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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