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파트너: 부채의 감각과 이별의 골격

토이스토리 3

by 달빛바람

안녕, 파트너: 부채의 감각과 이별의 골격


한 해의 끝은 가계부의 잔액을 맞추는 일보다 몸 깊숙이 박혀 있던 습관을 하나씩 도려내는 일에 더 가깝다. 2025년을 관통한 나의 가장 선명한 감각은 통증 그 자체가 아니라 오랜 통증이 끝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낯섦이었다. 수년 동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채무가 마침내 끝났을 때, 나는 예상과 달리 환호하지 않았다. 은행 창구 앞에서 마지막 숫자를 확인하던 순간에도 심장은 고요했고, 안도의 숨은 끝내 크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상실감이 물기처럼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 부채는 단순히 갚아야 할 금액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수면 시간을 조율하고, 하루의 식단을 고민하게 만들며 인간관계의 온도를 미묘하게 낮추던 보이지 않는 규율이었다. 조심스러워진 말투와 딱딱하게 굳은 어깨, 늘 쉬이 구매하지 못했던 장바구니 속 물건들. 빚은 나의 조건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생활방식이자 정체성에 가까웠다. 영수증 더미를 파쇄기에 밀어 넣을 때 들려오던 마찰음은 고단함이 잘려 나가는 소리이자 동시에 삶의 한 축이 무너지는 파열음처럼 귀에 남았다. 끝났다는 사실보다도 끝났기에 더 이상 붙들 것이 없어졌다는 감각이 오히려 나를 오래 붙잡았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공백을 견디기 위해 집 안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상경하던 해, 어머니가 골라주었던 낡은 이불과 이가 빠진 그릇들, 이사 때마다 묵묵히 따라다니며 끝내 제 역할을 다한 물건들을 하나씩 손에서 놓았다. 그것들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버티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접어 넣었는지 얼마나 자주 마음을 줄이고 몸을 낮추었는지에 대한 무언의 증거들이었다. 그러나 쓰임을 다한 것을 붙잡는 일이 추억을 지키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과거의 그림자 속에 현재를 가두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수거함 속으로 사라지는 물건들 앞에서 나는 매번 잠시 멈춰 섰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은 늘 비릿한 냄새를 남기며 그 냄새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방 안에 머물렀다.


이 냉정한 정리의 끝에서 나는 픽사의 〈토이 스토리 3〉를 다시 재생했다. 비워낸 집 안의 공기처럼, 화면 속 세계 또한 떠남을 전제로 숨 쉬고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이별은 상실이 아니라 인계에 가깝다. 대학으로 떠나는 앤디가 유년의 상징이었던 장난감들을 보니에게 건네는 장면은 단순한 작별이 아니라 삶이 다음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앤디는 장난감 하나하나를 설명한다. 이름을 부르고, 짧은 기억을 덧붙인다. 그것은 물건을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정중하게 말로 남기는 태도이다. 그의 손길에는 과거의 자신을 다독이는 마음과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순수를 안전한 자리로 옮겨두려는 조심스러움이 함께 묻어 있다.
그리고 멀어지는 자동차를 향해 우디가 건네는 마지막 인사. “안녕, 파트너.” 이 짧은 문장은 이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을 또렷이 가리킨다. 앤디는 뒤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성장의 책임을 다하고, 우디는 붙잡지 않음으로써 사랑의 방식을 바꾼다. 고요한 롱숏 속에서 카메라는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의 바닥에서는 분명 새로운 생의 맥박이 뛰고 있다. 붙잡고 싶은 욕망을 눌러 손을 흔드는 일, 상대의 앞날에 나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한 발 물러서는 결단. 그것은 영화 속 장면이자, 내가 빚과 물건과 관계를 떠나보내며 어렴풋이 배웠던 태도이기도 하다.


2025년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조심스레 자문한다. 나는 무엇을 제대로 보내주었는가. 청산된 빚, 수거함 속으로 사라진 물건들, 말없이 멀어진 관계들까지. 삶의 한 대목은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만 다음 문장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잘 떠나보낸다는 것은 지워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일부였던 것들을 가장 안전한 기억의 자리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섬세하면서도 단호한 의식에 가깝다. 앤디가 장난감들을 설명하듯, 나 역시 떠나보내는 것들 앞에서 한 번쯤 이름을 불러주어야 했음을 이제야 안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그러나 그 통증은 우리가 어떤 시간을 뜨겁게 통과해 왔다는 거의 유일한 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시절의 끝에서, 우디처럼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안녕, 파트너.” 그 한마디를 끝내 완성해 낼 때, 우리는 아이의 순한 얼굴과 어른의 단단한 보폭을 함께 지닌 채 새해라는 이름의 낯선 영토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그리고 우리는 이 안녕을 끝까지 말해낼 책임이 있으므로.


안녕, 2025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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