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과 비대면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사람의 얼굴

영화 <미안해요, 리키 We Missed You>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영국 101분

개봉 2019년 12월 19일

감독 켄 로치 Ken Loach


1. Opening 오프닝

- 형식적인 면접, 그리고 개인사업자


이 영화의 이야기는 영국 뉴캐슬, 한 택배 영업소의 차갑고 메마른 공기 속에서 시작된다. 회색빛 벽과 무심한 형광등 아래, 리키는 살아남기 위해 쌓아온 자신의 노동 이력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쓴다.

성실했고, 오래 일했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마치 훈장처럼 내민다. 그러나 근데 직원의 설명은 놀라울 만큼 짧고 형식적이다.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겁니다. 고용기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가 되죠. 임금대신 배송 수수료를 받구요.
이해가 됩니까?...... 서명하면 개인업자 가맹주가 되는 겁니다. "

이 말은 자유와 선택을 약속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는 문장이다. 이곳에서 노동은 보호받는 일이 아니라 포장된 언어 속으로 밀려난 개인의 몫이 된다. 리키는 이 순간 ‘직원’이 아닌 ‘사업자’가 된다. 보호도, 안전망도 없는 대신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 자율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위험을 홀로 감당하라는 통보에 가깝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그 짧은 순간, 리키는 마치 새로운 지위를 얻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더 혹독하게 소진할 권리를 넘겨받았을 뿐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그의 기대는 곧 보이지 않는 규칙과 숫자, 위치 정보로 감시되는 체계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장면에서 리키의 얼굴을 오래 붙잡는다.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눈은 이미 지쳐 있고, 그 표정은 이 계약이 결국 그의 삶을 어디로 데려갈지를 조용히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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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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