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모리 준이치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은 대지가 스스로를 녹여 생명을 틔워내는 고요하지만 치열한 투쟁의 기록이다. 주인공 이치코는 무를 반으로 잘라 구멍을 뚫고 끈으로 엮어 처마 밑에 내건다. 살을 에듯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무를 통째로 내맡겨 얼리고 말리는 과정이다. 이치코는 말한다. '무를 얼리면서 봄이 너무 기다려진다'라고. 사방에 먹거리가 넘쳐나던 풍요로운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모든 것이 굳어버린 겨울이 오면, 인간은 비로소 '기다림의 기술'을 배운다. 추위 속에 얼려야만 완성되는 맛, 그것은 효율과 속도만을 숭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상실했던 '시간의 맛'이다.
영화 속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 하나'라는 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결핍과 시련마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재료로 껴안는 태도. 스마트폰 하나로 전국 팔도의 산해진미를 문 앞까지 배달시키는 세상이지만, 제 손으로 흙을 일궈 준비한 재료는 그 풍미와 단단한 맛의 질감부터가 다르다. 거기엔 칼바람을 견뎌낸 인내와 만드는 이의 고유한 스토리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들인 음식은 소중한 누군가와 절로 나누게 된다. 그러나 삶은 늘 정성만큼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같은 레시피를 따라 해도 만드는 이의 손끝에 따라 혹은 그날의 공기에 따라 결과물은 매번 어긋나기 일쑤다.
이치코는 떠난 엄마의 레시피를 복기하며 감자 빵을 굽지만, 끝내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특유의 푹신한 질감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반복되는 실패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온도를 찾아가며 조금씩 어른이 된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군가를 완벽히 닮으려 애쓰다 좌절하고, 그 상처 난 틈새에서 비로소 '나만의 레시피'를 발견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게도 그렇게 나만의 봄을 준비하던 겨울이 있었다. 2004년, 스물한 살의 나는 군 입대라는 인생의 큰 과제를 앞두고 있었다. 5월 4일로 입영 날짜가 확정되자, 나는 홀로 남겨질 엄마를 위해 나만의 '얼린 무말랭이'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이치코가 이듬해 농사를 위해 눈이 내리기 전부터 밭을 갈아두듯, 나 역시 11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때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일터로 나섰다.
낙엽이 지고 거리가 황량해지던 초겨울, 나의 크리스마스는 패스트푸드점의 매캐한 기름 냄새 속에 갇혀 있었다. 연인들이 화려한 불빛 아래 밀어를 속삭일 때,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그릴 앞에서 햄버거 패티를 뒤집었다.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도 텅 빈 매장을 정리하는 소음 속에 묻혔다. 설 연휴, 고향 대신 향한 명동 거리는 거대한 냉동고 같았다. 거대한 인형 탈을 쓰고 홍보 전단지를 돌릴 때면 탈 안쪽은 비릿한 땀으로 흥건했지만,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살점을 베어낼 듯 날카로웠다. 봄의 기운이 살짝 감돌던 3월에도 나의 노동은 멈추지 않았다. 축제 열기로 들썩이는 교정에서 나는 축제 도우미로 일했다. 인원을 제한하고 기념품을 나누어 주며 타인의 즐거움을 구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이어지는 8주간의 단기 아르바이트는 차량용 내비게이션 텔레마케팅이었다. 얼굴 모르는 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차가운 거절의 언어를 수집하던 낮 시간은 명동의 칼바람보다 더 시리게 청춘의 자존감을 할퀴었다.
그렇게 겨울의 고통을 켜켜이 쌓아 올린 끝에 300만 원이라는 돈이 모였다. 입대 날 새벽, 나는 차마 엄마의 젖은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짧은 편지와 돈 봉투를 식탁 위에 두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영화 속 이치코가 '고생한 거에 비해 볼품없지만 사치스럽고 아까운 음식'이라고 말한 얼린 무처럼, 그 돈은 나의 가장 시린 계절을 관통해 빚어낸 결정체였다. 엄마는 끝내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한 채 장롱 깊숙한 곳에 부적처럼 간직하셨다. 자식의 고생을 차마 소비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시린 조미료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연병장에서 두 번의 겨울을 견뎌내는 동안, 엄마는 담장 밖에서 당신만의 '봄'을 경작하고 계셨다. 제대를 5개월 앞둔 시점, 엄마는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제대한 아들을 직접 차에 태워 시원하게 해안도로를 달리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하지만 평생 기계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중년 여성이 운전대를 잡는 일은 이치코가 땅이 마르길 인내하며 기다려 감자 씨를 놓는 과정만큼이나 고된 수양이었다.
"거 사서 고생하지 말고 때려치워라. 말뜻도 이해 못 하면서 뭔 놈의 운전이고?"
아버지의 모진 핀잔에도 엄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봄에 돋아날 감자싹이 서리를 맞지 않도록 전년도부터 비닐을 덮어두는 농부의 단호함이 엄마에게도 있었다. 필기시험에서 네 번이나 고배를 마셨지만, 엄마는 4전 5기 끝에 합격증을 받아내셨다. 그 기세를 몰아 실기는 두 번 만에, 도로주행은 단 한 번에 통과하셨다. 운전 강사는 "아줌마가 운전이 아주 시원시원하네.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베스트입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아들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겁 많던 여인을 거침없는 주행자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마침내 5월, 제대를 하고 연병장을 나선 날 엄마는 약속대로 삼촌 차를 빌려 마산 시내를 달리셨다. 보조석에 앉아 바라본 엄마의 어깨는 처음엔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복잡한 시장통과 교차로에선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연신 진땀을 닦으셨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인 해안도로에 접어든 순간, 엄마의 발끝에 힘이 실렸다. 망설임 없는 가속. 창을 내리자 쏟아져 들어오던 5월의 찬란한 햇살과 갯내음 섞인 공기. 그 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리던 엄마의 머리카락과 주름진 눈가에 언뜻 보인 승리자의 미소. 그것은 이치코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전력 질주할 때 느꼈던 해방감보다 훨씬 뜨겁고 밀도가 높은 것이었다. 그날의 드라이브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엄마와 나눈 내 생애 가장 완벽하고 유일한 봄의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는 아들과의 그 짧은 여행을 인생의 마지막 과업처럼 완수하시고, 5년 전 3월의 첫날 영면에 드셨다. 대지에 온기가 돌고 모든 만물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바로 그날에 말이다.
3월 1일. 남들에겐 만세 소리 가득한 축제의 날이었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지붕이 무너진 날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봄바람이 부는 것조차 증오스러웠다. 대지는 깨어나는데 왜 엄마만은 차가운 흙 아래 잠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픔은 얼어붙은 무말랭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가슴 한구석을 찔러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오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나는 영화 속 이치코의 뒷모습을 본다. 그녀는 코모리로 돌아와 전통 춤을 추며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성장이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땀 흘릴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나 또한 지갑 속에 꽂힌 엄마의 운전면허증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비로소 울음을 멈춘다. 낡은 사진 속 엄마는 여전히 '베스트 드라이버"의 당당한 눈빛으로 나를 독려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봄을 준비하는 마음은 부지런한 손길과 서늘할 정도로 단호한 결심을 요구한다. 때로는 화사하게 피어난 꽃을, 더 단단한 열매를 위해 과감히 잘라내야 하는 아픔도 따른다. 그 수고로운 과정을 묵묵히 통과해야만 비로소 '나만의 숲'이 뿌리를 내린다. 이제 내게 봄은 상실의 계절이 아니라 엄마가 4전 5기의 고통을 조미료 삼아 빚어낸 희망의 계절이다.
찬바람 끝에 미지근한 온기가 섞여들 때면, 나는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지른다. "엄마, 이제 정말 봄이야!"라고. 겨울은 시린 이별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고구마처럼 달콤하고 진한 그리움을 구워내는 계절이다. 엄마가 남겨준 그 묵직한 '시간의 맛'을 가슴에 품고, 나는 오늘 다시 인생이라는 도로 위로 시동을 건다. 엄마가 보여준 그 시원시원한 속도로, 남은 생을 거침없이 달려 나갈 준비를 마쳤다.
봄은 단순히 달력 한 장을 넘기는 일이 아니다. 추위를 조미료 삼아 내 안의 가장 단단한 알맹이를 완성해 가는 치열한 사랑의 기록이다. 내 지갑 속 면허증이 반짝인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