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자작시
하나의 계절이 되어
장롱 서랍에 묻힌 봉숭아 씨는
한 번도 터지지 않은 울음을 안고 있어
가늘게 접힌 종이학들 틈 사이
나는 오래도록 말 없는 너를 지켜보았지
지워지지 않는 흑연의 마음
책상 서랍 속에서 덜거덕거리는 비밀처럼
햇살은 매미보다 먼저 울고
교실 창 너머로 쏟아지던 여름 속에
손끝에 남았던 유충의 기억은
결국 껍질 안의 언어가 되지
구불구불 기울어진 골목에서
너는 매일 달라지는 이름을 가진 아이
누군가의 장난과 시선 사이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을
마치 새 구두처럼 조심스레 신곤 했지
성장은 저마다의 소리로 울고
울음을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운
너는 말이 늦게 트였지
지나간 시간은
늘 늦은 봄과 비슷해
혼자 앉은 벤치 위에
창문을 두드리던 바람은
누구의 안부처럼 들리고
의미를 묻지 않는 대화 속에
마음이 자라는 속도를 처음 알았지
그 속에 기다림과 외로움이
같은 언어의 서로 다른 강세라는 것도
그 무렵 어렴풋이 알아챘어
이제 나는
질문 대신 답을 말해야 하는 곳에서 살아가
창문 없는 복도, 식지 않는 불빛,
목소리가 머무르지 못하는 통화음 속에서
너의 그림자는 더 길어져
서랍은 이제 빈틈없이 닫혀 있고
기억은 가끔 푸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려야 할 층을 지나칠 때처럼
잠시 들렀다가 사라져
하지만 모든 계절은
한 번 지나가야 다음 풍경을 품게 되지
번데기는 외투가 아니라
남겨두고 가야 할 내면의 집
너를 넘어서야
나는 끝내 여기에 도착할 수 있지
손목에 묻은 색연필 냄새
운동장 끝에서 혼자 묶던 고무줄의 끈기
울음을 참고 삼키던 늦은 오후의 거울
그 모든 장면들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아
시간은 스스로 자란 것들을
스스로 놓아야 한다는 방식을
풍경을 바꾸며 가르쳐 주었어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음 땡
나는 이제 술래가 아니야
이제 계절의 문을 닫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