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삶 이야기

중학교 때 추억

by 해피손

우리 마을은 토끼하고 발맞추던 산골, 둘레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마을이다. 논이 조금 많고 밭이

조금 적은 정도의 비율이었다.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과 호야불이 전부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다고 축제분위기

였다.


공부욕심이 있어 시험기간에 졸음을 쫓아가며 공부하다

보면 꾸벅꾸벅 졸아 앞머리를 코시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호롱불은 책을 보기엔 너무 어둡고 호얏불은 더 밝은데

기름냄새 때문에 오래 쓸수록 머리가 아팠다.


유독 잠이 많은 아이여서 시험기간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공부욕심은 있는데 졸음은 계속 오고 작두물을

뿜어 차가운 세수를 하며 공부했다.


워낙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기에 모범생을 자처했다.

수업시간에도 태도가 좋았고 특히 좋아하는 수학시간

에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집중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환경이 싹

바뀌었다. 지금처럼 형광등은 아니고 백열전구라

그리 밝지는 않지만 호롱불과 호얏불을 쓰던 마을은

순식간에 광야천지처럼 느껴졌다.


하루에 시내 가는 버스도 네다섯 번이 고작이었다.

논 밭일을 하다가 버스 지나가는 것 보고 시간을 가늠

하곤 하셨단다.


시내에 가서 장을 보다가도 막차시간을 못 맞추면

낭패였다. 먹을게 충분하지 않고 넉넉한 살림도 아니

어서 거의 자급자족에 가깝고 놉을 얻게 되면 광주리에

이고 다닌 생선장수한테 구입했다.


그때만 해도 기와지붕이 아니고 볏짚을 엮어만든

초가지붕이었다. 지붕에서 비가 새면 흙집인 여기저기

샐 수 있어 1~2년에 한 번씩 봄에 이엉을 이었던 것

같았다.


이웃분들 품앗이를 통해 가을부터 말린 볏단을 추려

길게 이어나간 이엉은 무슨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일꾼이나 있어야 생선요리, 계란요리등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산골이라 천수답이 많았는데 비가 안 와

기우제를 지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논도 많지도 않은데 비까지 안와 벼농사는 꿈도 못 꾸고

논에 밭처럼 마른땅에다 당근과 서숙을 심어 그해 가을

당근이 내 팔뚝처럼 잘 되어 서울로 한차 판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가락동농수산물쯤으로 기억된다.

쌀밥이 그리웠던 시절, 잡곡밥을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건강식에 다이어트식인데 그땐 몰랐다.


쌀이 부족해 늘 무밥을 해줬을 때도 먹기 싫어 힘들었는데

지금생각하면 소화도 잘되고 밭에서 나는 보약으로

특별식이었다.


어떤 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으면 행복했었다.

남의 집에 양식 빌리러 가지 않고 자식들 식모살이 보내지

않으면 보통집은 됐었다.


물질은 많이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전기불

하나에도 마을이 축제분위기로 휩싸인 청정지대였다.


팍팍한 현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행복을 꺼내 쓰고 있다. 그때 행복과 추억을 많이 저축해

놓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