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삶 이야기

중학교 때 에피소드

by 해피손

우리 마을에서 둘, 음촌마을에서 둘,

넷이서 짝을 이루기 재를 넘어 등교를 했다.


공기 좋고 깊은 산속이라 혼자서는 무서워서 다니기

힘들다. 둘씩 짝을 지어 노래를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등굣길에 올랐다.


중학교는 네이비색 교복에 하얀 카라가 달린 교복,

파란 끈 운동화, 스파이크라고 불리었던 기억이다.


일요일에 깨끗이 빨아 새 신발처럼 깨끗한 운동화,

운동장에 모여 조회시간에 보면, 시내 애들은 깨끗한데

재 넘어 온 동네친구들과 내 신발은 이슬과 흙으로

젖어 있었다.


넷 중에 당번이라도 걸리면 혼자서 재를 넘어야 했다.

다른 친구보다 일찍 등교해 학업준비며 청소를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산 중턱 바위 곁을 아지트로 정해서 모여서

출발하는데, 늦어서 정신없이 오르막을 올라 아지트에

올랐는데 아뿔싸, 집에서 신고 있었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뜀박질하며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학교에 늦으니 더 기다려 줄 수는 없고 친구들은 서서히

출발한다


나는 발이 안 보이도록 뛰어서 집에 가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다시 올리오며 앞서가던 친구들을 따라잡으러 힘겨웠던 지난날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당번 걸린 날 무서움을 달래려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는데, 옆에서 푸드덕하고 꿩이 날아갈

때는 깜짝 놀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때는 불을 때서 밥을 해 먹는 시대라, 머슴들이 산에

땔감을 하러 지게 지고 가끔 나타났다.


미리 도망갈 수도 없고 산속에서 그분들을 만나면

지나쳐 갈 때까지 가슴이 두 근 반 서근 반 뛰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땐 한센병 환자들이 동냥하러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

소문도 자자했다. 어린아이가 없어졌다는 둥.


그런 마을을 거쳐 갈 때는 평소에는 얘기도 잘 섞지 않던

남학생들 뒤를 바짝 따라가곤 했었다.


하굣길은 평지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늦은 시간 재를 넘기엔 더 무섭고

줄을 지어 하교하다 자기 마을에 당도하면 하나 둘

줄어들었다.



마지막 동네인 우리 마을은 평지라도 구부길이 많고,

반이 달라 둘이서 오는 일도 많았다.


가을날 부엉이가 울 때는 왠지 쓸쓸하고 적막했다.

달빛이 훤할 때는 조금 나았고, 날씨가 어두울 때는

물레방앗간을 돌아가야 하는데 흉흉한 소문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늘 안고 지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보리밭 사이에 어슬렁

거리는 늑대를 본 적도 있다.


다행히 하굣길 학생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을 때라

두려움은 없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산새들과 함께 지저귀고,

때로는 영어단어장을 손에 들고 단어를 큰소리로

외우기도 하고 다녔다.


겨울철 눈이 소복이 쌓어 길이 미끄러울 때는 앉아서

미끄럼을 타고 밑에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에 잔뜩 얹어 있던 눈꽃송이가 나를 덮칠 때는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재를 넘어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쌓은 추억들은

늘 그리운 시절의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