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삶 이야기

내성적이고 얌전하며 영리한 아이, 모범생이 되다

by 해피손

3남 3녀 중 2녀로 태어나서 위로는 언니, 오빠,

그다음이 나였다. 밑으로 남동생 둘과 막내가

여동생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마을에는 아침부터

음악이 울려 퍼진다. "새벽종이 울리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새마을 노래다.


초등학교 1학년 코 흘리게 시절 옆집에 나이 많은 동급생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 손을 잡고 가슴엔 이름표와

수건을 접어 달고 있었다.


작지만 의젓했던 나는 부모님 대동하지 않고 마을 앞에

흐르는 냇가 돌다리를 건너 등교를 했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500m 정도 거리이며,

학교 종소리가 마을까지 울려 퍼졌다.

학교 가는 게 설레고 즐거웠다.


집에서 동생들 보는 것보다 친구들과 수업 듣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많아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등

뭐를 해도 신이 났다.


친구들 중 키와 체구는 제일 작았지만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말은 늘 듣고 자랐다. 하지만 숫기가 없고 내성적인 데다가 얌전하기까지 하니 제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당연히 반장은 꿈도 못 꿨다.





학교 다녀오면 당연히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종종 도왔다. 엄마에게 딸랑

딸랑 방울처럼 따라다녔다.


살아남기 위해, 잘 보이고 싶어 부모님 말씀은 물론이고

학교선생님 말씀도 곧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워낙 시골이고 변변한 동화책 한 권 없던 시절, 공부를

잘하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께서는 방학선물로 동화책을

사주고 가셨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백설공주"로 기억

하고 있다.


그 책을 받아 들고 읽고 또 읽고 너무 행복해했다.

글짓기나 모든 면에서 우수했던 나는 선생님 눈에도

잘 띄어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크게 부유하지는 안 했지만 밥은 충분히 먹고 자랐고,

언니, 오빠, 동생들이 있어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언제나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을 아빠로 둔 친구는 나에게 부러운

대상이었다. 아빠손을 잡고 함께 등교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물론 하교 후엔 같이 놀며 친하게 지냈다.


어린 시절 명절 때가 되면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다.

먹고살기 어려워서 집집마다 장녀들은 식모살이를 가고

남의 집 양녀로도 갔다. 공장에 돈 벌로 떠난 이들도 있었다.


명절이라고 가족들 명절빔들을 선물로 한아름 안고

왔다는 둥, 돈을 많이 벌어 논을 산다는 둥, 자랑거리가

마을을 수놓았다.


물론 우리 집은 모두 같이 살고 있고, 그 정도는 아니었다.

뿔뿔이 흩어질 정도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친구는 부러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다.




평범한 집안에 태어나 형제자매 6형제가 오손도손

살고 부모님 사랑받고 자랐으니 행복한 삶이었다.


언니는 형편상 진학을 못하고 오빠만 진학을 했다.

어려운 형편에선 남녀가 구별되어진다.


양재학원을 다니며 재단을 배우던 언니,

꽃무늬 포프린으로 만든 원피스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듬뿍 샀다. 자랑할 게 없던 나에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사랑받는 아이,

얌전하고 영리한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그때부터 사랑받는 방법을 배워 더 잘 보이려고 하고

모범생이 되길 자청한 것 같다. 부모님 말씀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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