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엄마의 프랑스 소아응급실 방문기
북한엄마와 3살 한불혼혈 딸(프랑스국립병원 응급실 체험기)
엄마가 되면 받고 싶지 않지만, 무조건 받아야만 하는 전화가 있다. 아이들 학교에서 걸려 오는 전화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낮시간에 걸려 오는 전화는 대략 두 가지 원인밖에 없다. 아이가 아프거나, 친구들과 놀다가 다치거나 둘 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한다. 어제 낮 외출 중이었는데 가방 안에서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핸드폰 스크린을 통해 아이들의 학교 이름이 뜨는 걸 보니 학교의 전화였다. 만사 제쳐놓고 전화를 받았다. 둘째 딸아이 반 보조 선생님 전화였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유리가 의자에서 놀다가 뒤로 넘어져서 다쳤어요. 뒷 머리쪽에 작은 혹이 생겨셔, 우리가 얼음으로 응급처치를 하면서 관찰하고 있었어요. 한 시간쯤 지났는데, 토하기 시작하네요. 우리가 구급차를 부를까요? 가까이에 있다면 얼른 오셔서 함께 동행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금방 학교로 갈 테니,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낙상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긴 한다. 보통은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토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응급 프로토콜을 배우고 경험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와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차는 막히고 가슴은 답답하고, 다행히 남편이 재택근무 중이라 콜 해서 빨리 학교에 가 보라고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막 뛰어서 안쪽 건물로 들어가니, 선생님들이 식당 쪽으로 안내해 줬다. 딸아이 주변으로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엄마가 왔다. 선생님이 그랬잖아. 엄마가 금방 오실 거라고…’ 딸아이는 내 품에 안겨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머리뒤쪽 다친 부위를 만져보니 메추리알 크기의 혹이 나 있었다. 3분이나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고, 세 명의 구급대원이 학교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남편도 들어왔다.
구급 대원은 친절하게 딸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딸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딸아이의 검지 손가락에 혈압계를 붙이고, 안구의 반응을 관찰하고, 체온을 재고, 또 다른 한 명은 주변 소아과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아이는 말도 잘하고 눈동자 반응도 잘 되고, 다 괜찮은 것 같지만, 토하는 증상이 있기 때문에 일단 응급실로 가야 된다고 했다. 구급차의 안내를 받으며 시의 국립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로 응급실을 방문하면 별도의 접수 절차 없이 바로 소아과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소아과 응급실에서 간단한 등록 절차를 마치고 대기하라고 했다.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자주 토했다. 아침도 대충 먹고 학교로 갔는데 점심은 한 숟가락도 안 먹고 굶었다고 했다. 아이의 위쪽엔 더 이상 토할 음식물이 남아 있지 않는지, 하얀색 거품과 뒤섞인 노란색 열물까지 쏟아 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기다리라니… 남편은 아이를 품에 안고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병원의 복도를 열 바퀴나 걸었을까? 남편이 나를 불렀다. ‘엄마가 진정을 못하고 그렇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무서워하니까 침착하게 옆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주 이런 얘기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말라고… 근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조절이 안 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쯤 기다렸나… 앳된 보이는 의사, 레지던트로 보이는 여 선생이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소아 응급실에서는 환자들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의사들은 위기의 순간을 판단하며 환자들을 진료했다. 소아 응급실에는 양부모 중에 한 부모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의료 언어를 알아듣기엔 나의 불어 실력이 약하다. 남편을 동반해서 보내고 나는 'sall de attendre’에서 기다렸다.
의사는 본인이 판단하기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아이가 토하는 증상이 있기 때문에 뇌 mri를 찍어 봐야 한다고 했다. 타박상 뇌 mri는 사고당한 시점에서 4시간 이후에 찍어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빠르게 찍어 봐야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낮잠 시간이 겹쳤던 아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잠에 빠져 들었다. 의사는 낮잠을 재워도 되긴 하지만, 깊은 잠에 들면 안 되니 자주 만져주거나 깨워서 선잠을 재우라고 했다. 남편이 아이를 안아 재웠다. 나는 출입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병원 복도에서 기다렸다. 한 3, 4시간 기다렸나…
병원 복도를 수백 바퀴는 걸어 다닌 것 같았다. 프랑스 병원은 보통 지어진 지 수십 년이 된 건물들이 많다. 아이 소아과 병동이 있는 건물도 건축 양식이 1960년대의 건물에 가까웠다. 전체 병동의 건물 자체가 노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병원은 기본적으로 좀 어둡다. 소아과 입원실과 응급실이 있는 쪽은 햇빛이 잘 들었다. 성인 응급실이 있는 쪽은 창문도 없다. 어두운 조명 아래 노후한 건물, 건물 보수가 제대로 잘 안 되는 것 같다. 벽에는 피인지 구토물이 말라 붙은 건지 알 수 없는 얼룩도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일부 벽에는 신발 자국도 나 있었다. 기둥 몇 곳은 시멘트가 조금씩 부서진 흔적도 보였다. 건물자체는 노후했지만, 의료설비나, 의료기구들은 현대식이었다.
낮잠을 다 잔 딸아이가 엄마를 찾았다. 잠깐 들어가서 아이를 돌보라고 했다. 딸아이는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멀미가 난다고 하는 걸 보니, 속이 아직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 의사는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축 처져 있는 아이를 번갈아 가면서 안고 어르고 달래며 기다렸다. 오후 네시가 되었다. 아이의 이름을 mri리스트에 올렸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큰 아이의 데리러 갈 시간이라 남편에게 부탁하고 학교로 갔다.
선생님들이 걱정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디렉트리스와 딸아이 반 단임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딸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간단하게 아이의 상태는 괜찮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주말에 혹시 전화해도 되냐고 너무 걱정돼서 그런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고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의 간식을 챙기고, 속상한 마음을 부둥켜안고 10분에 한 번씩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면, 내가 집으로 향한 후 40분 정도 더 기다렸고, 드디어 mri실로 갈 수 있었다. 부분별 mri를 찍을 수 있는 작은 원통형(우리가 티브이를 통해 흔하게 봐왔던 온몸 전체를 스캔하는 장치는 아님) 장치에 침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가 침대 위에 누우면 놀라지 않게 아빠가 아이의 다리를 만져주며 말을 건네줬단다. 의사는 칭찬을 연발했다고 했다. ‘너처럼 용감하고 아름다운 아이는 처음이야. 넌 어쩜 이렇게 멋지고 예쁘니?’ 낯선 어른인 의사의 칭찬에 신이 난 딸아이는 두 눈을 꼭 감고 용감한 투사의 심정으로 엠알아이 기계가 자신의 머리를 스캔하는 과정을 견뎌냈다.
딸아이의 뒤에는 열두 살 먹은 남자아이가 팔 골절상으로 깁스를 하고 엠알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웅장하고 낯선 기계 안에 자신의 신체를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는지 그 아이는 엄마의 팔을 잡고 나를 지켜 달라고 함께 있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의사는 나의 딸아이를 보라고 했다. '용감한 이 아이는 3살인데도 칭얼거림 한번 없이 버텼어. 이 기계는 보기만 크지 너의 팔에 닿지도 않을 거야. 큰 사진기나 다름없어...'라고 하면서 '용감한 딸’에게 상으로 예쁜 펜던트 목걸이를 걸어 줬다.
하트모양 안에 하얀색 유니콘이 무지개를 달리는 그림이 있는 예쁜 목걸이였다. 모든 진료비용은 백 퍼센트 무료다. 주차요금은 환자부담인데 14유로가 나왔다고 했다. 3살 인생에 가장 스펙터클한 하루를 보낸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본인이 겪은 무용담이 자랑스러운 딸아이는 저녁 내내 쫑알거렸다. 오후 네시쯤 축느러져 있는 딸아이를 보고 걱정했었는데, 두 시간 만에 몸을 회복한 게 참 신기했다. 유니콘 목걸이의 플라세보 효과라도 되는 걸까? 하루종일 굶었던 딸아이는 주스와 호두를 먹으며 병원에서 겪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아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 자라고 똑똑해지고,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 그냥 아이가 건강하게 안전하게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아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면 왜 그렇게 바람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고, 더 잘 가르치고 싶고, 더 뛰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항상 건강하게 평화롭게 엄마옆에만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