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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Nov 22. 2023

남북한을 경험한 탈북민 제3 국 프랑스에서 자유를 찾다

자유를 찾아서 탈북했건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에게 드립니다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나는 드디어 내가 꿈꿔왔던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자유롭다. 북한에서 살아왔던 과거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떠안고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남한에서의 경험도 프랑스에 적응하기 위해 버려버려야 할 과거가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한 채 프랑스에서 또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것뿐이다. 나는 남한이나 북한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자유를 프랑스라는 제3의 땅에서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모인 장소 어디를 가든 나를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 자체가 없다.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 안에 북한도 남한도 프랑스도 다 있다. 남한에 살 때는 그렇지 않았다. 북한을 애써 부정해야 만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한 톨의 북한도 다 없애야만 남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직장서에도, 어디에서도 나는 북한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혀 살았다. '낙인'일까 '배려'를 하기 위해서일까? 북한 출신이기 때문에 혜택도 받았지만, 차별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북한사투리를 쓰면 나는 직업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사투리를 고쳐야 했다. 내가 아나운서 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연필을 에 가로 물고 매일 한 시간씩 신문을 읽고 뉴스를 따라 읽었다. 그럼에도 사투리는 고쳐지지 않았다. 택시를 타면 내 목소리와 말투에서 튀어나오는 이국적인 느낌을 한국 사람들은 쉽게 알아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조선족’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탈북민’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난 사람마다, 물어보는 사람마다 수없이 반복해 왔던 나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당신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며, 남한에 적응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살기 위해 '남한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한화’란 한국 언론에서 '적응’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이다. '적응’이라는 것은 북한 사투리를 버리고, 패션이나 화장을 세련되게 하고, 남한 사회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적당한 직업과 경제적인 성공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사람임을 숨기고, 북한사람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북한에서 갓 나온 사람들은 특유의 뉘앙스가 있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쉽게 들키기 마련이다. 북한에서 뒤집어쓴 멍에를 달고 다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것들을 벗어려고 우리 탈북민들은 많은 돈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것이 낭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지만, 모든 면에서 훌륭하게 적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출신들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본인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는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충분히 인정받거나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는 우리를 '탈북자’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은 '탈북민’이라고 불렀다가 이제는 '북향민’이라고 부르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특정 인종이나, 출신, 그리고 종교인들을 통계로 집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전쟁을 겪으며 나치에게 학대받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불법이 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이너리티에게 어떤 이름이든 붙여 부르는 것 자체가 차별을 만들고, 약자 스스로가 그 차별과 편견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수 년 전에 북한을 떠나고, 남한 사람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이 되고 30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보다는 ‘새터민’, ‘탈북민’, '북향인’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땅 안에 북한출신이라는 또 다른 '섬'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북한출신들에게 아무리 훌륭하고 북한출신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내는 단어를 사용해도 그 단어는 우릴 구분 짓고  편견이라는 울타리에 가두는 거리고 말하고 싶다. 새터민, 탈북민, 북향민 우리를 지칭하는 단어를 정치적 입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려는 이런 노력들 자체가 되게 의미가 없고 소모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냥 놔두고 기다려주면 알아서 다들 적응하고 본인들만에 살길을 찾아 잘 살아가는데 말이다. 정치인들이 우리 탈북민들을 정치적인 입지에 맞게 너무 이용하려 들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 일반 탈북민들, 통일이라는 테마를 직업으로 삶지 않는 평범한 탈북민들에게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이러한 이름들이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우리는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고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반드시 찾으라고 한다면 북한 정권을 등진 북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북민'이 가장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우리 탈북민들도 남들의 말하는 '적응'이라는 잣대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각자 본인들만의 페이스로 삶을 개척하고 남한 생활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적응'에 빠르고 느림은 없다. 빠르다고 해서 진짜 빠른 것도 아니고 조금 느리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딜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탈북민들 개개인의 감정이다. 우리 북한에 '느린 놈도 살고, 빠른 놈도 산다'라는 말이 있다.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도 마찬가지다. 느린 사람도 빠른 사람도 다 본인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느린 놈이 괜히 빠른이 흉내를 내다 뒤집어지면 그 길로 황천길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 부디부디 본인들만의 페이스를 찾기를 바란다. 북한에서 사선을 넘어 목숨을 걸고 탈북한 탈북민들이 자살률이 남한 사람들의 몇 배가 된다는 기사를 봤다. 오죽했으면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탈북민들이 드물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결과는 '적응'의 잣대를 남용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북한에서 겪은 경험들을 애써 버리려고 하지도 말고, 잊으려고 과한 노력들을 하지 말길 바란다. 북한에서 겪은 경험들이 트라우마가 되고 밤마다 꿈속에 어지럽고 괴로우면 병원을 찾아서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그냥 묻어 두고, 덮어 놓으면서 홀로 북한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섣부르게 다루다 보면, 그런 노력들이 다 마음에 병이 될 수 있다. 치유라는 게 시간이 걸리고, 적응이라는 것도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게 인생인 것 같다.


남한에서 '차별'로 인해 '적응''이라는 게 힘들고 괴롭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 보는 것도 추천한다. 언어라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우리 탈북민 1세대는 어느 나라를 가든 일단은 고생을 해야 한다. 미국에 자리 잡은 한인교표 이민 1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탈북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한국처럼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국가이다. 사회민주주의 국가는 어감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고르게 섞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탈북민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에게 사회복지 혜택을 받다 보면 북한이랑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유럽에 사는 많은 탈북민들이 1912년에 태어난 김일성이 만들고자 했던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혹시 여기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민들이 언어나 문화라는 장벽만 극복할 수 있다면 서구 유럽 사회시스템 자체를 이해하 게 한국보다 수월하다. 한국처럼 무한 경쟁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1세대가 좀 고생하면 2세대들은 그런대로 실력에 따라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 '인종차별'이라는 난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인종 같은 민족에게 말투나 표현이 달라서 차별받는 것보다는 덜 억울하다. 이건 아예 언어와 문화 인종이 달라서 차별받는 거니까. 차별을 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말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죽거나 포기하지 말고 해외로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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