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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Nov 24. 2023

두만강의 겨울 1

북방의 두메산골 정선이의  가을

갓 해방을 맞이한 북한 땅이다. 함경북도 경원군 하면리에 부유한 농사꾼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참 좋아했다. 마을에서 소녀를 700 곡집, 800 곡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모르는 노래가 없는 소녀였다. 무슨 일인지 소녀는 맑은 우물 속을 공허한 눈으로 노려고 보고 있었다.  햇빛이 닿은 우물은 소녀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유난히 큰 검은 눈동자를 몇 번 깜빡이더니 누리끼리한 봉투에 담긴 백색 가루를 보았다.  소녀의 아버지가 변소의 벌레들을 잡을 때 쓰던 가루였던데, 독약이라고 했다.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늘 당부했었다. 소녀는 아버지의 경고가 있던 그 백색가루를 입안에 남김없이 털어 넣었다. 우물가 곁에 놓여 있던 두레박을 손으로 살짝 밀어 우물로 떨어 뜨렷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얼굴을 반사시켜 주던 물은 두레박 무게에 실린 중력의 법칙으로 산산이 갈라져 버렸다.


두레박에 이내 우물 안에 고여있던 맑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소녀는 가녀린 팔에 한껏 힘을 주어 두레박 줄을 끌어당겨 올렸다.  그리고는 두레박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백색 가루는 물과 뒤섞여 소녀의 뱃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음먹은 일을 끝낸듯한 소녀는 우물가에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날 하늘은 유난히도 청명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하늘과 우물가의 주변과 작별이라도 하고 싶은 소녀는 누운 자세로 목에만 살짝 힘을 주어 머리만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하늘이 새까매지면 나는 죽는 것거야.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의 이름은 김정선이다. 소녀라고 하기에는 육체적인 성숙이 이미 성인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 얼굴은 아직 볼때기에 젖살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앳되어 보이니, 소녀와 처녀 그 경계쯤 어딘가에 있다. 정선이는 정주 김 씨라는 양반 가문을 조상으로 뒀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 혼란한 시대를 거쳐온 그녀의 조상들은 대대손손 두만강변 어딘가에 터를 두고 살아왔다. 그녀의 고향에서 100리쯤 걸어가면,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의 울창한 이깔나무숲을 접하고 있는 조러 국경이 있다. 서쪽으로는 허허벌판 반주 평야를 끼고 있는 조중 국경이 두만강을 굽이굽이 에돌면서 그녀의 고향을 감싸고 있었다.


북방의 구석에 쪼그리고 국경을 접한 초라한 시골에도 명문가 가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정주 김 씨가 살고 있을까? 그녀는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조선 후기의 혼란을 틈타 족보를 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왜냐면 정선이의 아버지를 비롯해 그녀가 낯을 알고 있는 핏줄로 엮인 어른들 중에는 그 옛날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양반의 고고한 자태와 품위를 지켜가며 사는 사람은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를 못내 싫어했다. 그녀가 아는 한 아버지는 수전노였다.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집착에 가까운 면을 보였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도 아까워했고, 자기 입에 들어가는 밥값마저 아껴 쌈짓돈을 만들 정도로 얄미운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바깥에서만 살았다. 봄에는 땅을 뚜져내고 돌을 고르고, 밭은 갈고 씨앗을 뿌렸다. 여름에는 땡볕에 무릎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며 풀을 뽑았다. 가을에는 한 알의 낱알도 남김없이 거둬들였다. 겨울에는 재래식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남의 똥을 퍼내고 잡초와 쑥 톱밥을 섞여서 거름을 냈다. 마누라에게  남의 집의 머슴살이도 시켰다. 일본 놈의 집에서 콩자반을 만들게 하고, 기모노를 빨게 하고 게타짝을 닦게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땅을 샀다. 한 평 두 평 한 조각 두 조각 땅을 사 모았다. 그 땅에 농사를 지었다. 자기 땅에서 나는 알찬 수확물들을 자기 새끼들 입안에도  안 넣고 다 팔아 아끼고 모았다.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자기 신체를 깎아내며 돈을 모아 땅을 샀다. 그렇게 평생을 모은 땅이 꽤 됐다. 정선이의 아버지는 소작농으로 시작했으나, 머지않아 곧 중농이 되었다. 이제 본인 땅에서 농사지은 수확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남는 작물은 팔아 돈을 만들었다. 이제는 집안 형편도 펴고 먹고살 만해져서 이제 나도 돈 한번 써 보나 하고 벼르고 있을 무렵 젊음을 혹사당한 탓인가 정선이 엄마가 병 져 누다. 그 무렵 정선이네 고향 땅값이 무지하게 떨어졌다. 정선이 엄마가 수발을 들던 일본인 노부부가 땅을 싸게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정선이 아버지는 그 땅을 샀다. 정선이 엄마가 부엌일을 거들고, 아이들을 돌봐주던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땅을 싸게 매물로 내놓았다. 정선이 어머는 그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고, 정선이 아버지는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털어 그 땅을 샀다.


이제 중농이 아니라 부농이 되었다.


자식들과 마누라 그리고 정선이 아버지가 해가 뜨는 동시에 들에 나가 해지도록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그 땅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작을 줬다. 이제 집에 식구들도 늘고 재산도 불어났다. 집안 사정이 좋아져서 평생 고생만 한 정선이 어머니 그동안 모으기만 했던 돈 한번 원 없이 써 보나 싶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났다. 정선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할 팔자 따로 있다. 제 팔자에 어울리지 않는 삶이 버거웠던 게지.'라고 하며 홀로 남겨진 아들 걱정만 했다. 정선이는 정주 김 씨 맏아들의 장녀였다. 그래서 이름 한번 요란하게 지었다. 할머니는 딸년을 낳았다고 정선이 엄마를 구박했지만, 정선이 아버지는 첫 딸을 가지게 된 게 몹시 기뻤던 모양이다. 경원 읍까지 걸어가서 돈을 주고 딸의 이름을 지어 왔다고 하니, 지 입안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아끼던 양반치고는 무지하게 기뻤던 모양이다. 쇠똥이 개똥이 말년이 말순 끝순이가 딸년 이름으로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치고는 사랑 꽤나 받았다고 느껴야 할 법하다.


정선이는 엄마를 잃었다. 아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정선이에게는 엄마 잃은 동생들을 돌봐야 할 막중 책임이 생겼다. 이제 학교도 그만두었다. 정선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은 고생만 하던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픔도 아니다. 엄마 잃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아니다. 아버지가 곧 재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재혼상대는 이제 곧 열아홉 살이 되어 오는 동네에서 곱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아리따운 처녀였다. 새엄마가 될 처녀는 정선이보다 세 살 더 많았다. 정선이에게는 나이 세 살 더 많던 동네 언니가 새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죽을 만큼 괴로웠. 동네에는 이미 수전노라고 소문이 난 아버지가 있었고, 이제 곧 이 동네의 모든 총각들이 미래의 마누라감으로 점찍던 아리따운 처녀를 아이 셋 달린 홀아비가 돈을 무기로 써서 낚아 채 갔으니, 작은 시골마을에서 미움받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정선이는 다 싫었다. 새엄마가 될 동네 언니도 싫었고, 엄마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 새 장가를 들겠다는 아버지도 싫었다. 남아있는 동생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하겠지. 정선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죽고만 싶었다. 그냥 이 꼴 저 꼴 다 보기가 싫었고,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정선이는 몇 분 전에 먹은 백색가루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저 푸른 하늘이 새까매지면 나는 죽은 것 거야 그리 생각하며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자꾸만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주변의 숲 속의 새소리로 빙의해서 들렸다.  코에는 푸릇한 들풀 냄새가 풍겨 왔다. 우물에서 이끼와 섞여 썩고 있는 듯한 비릿한 물 냄새도 정선의 코끝을 자극했다.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하늘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검게 보여야 하는 저 하늘이 점점 더 파랗게만 보였다. 정선이는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졌다. 백색 가루약을 털어먹은 부작용인가 이제 배가 아프다 죽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는데 이게 죽고 싶은 배 아픔은 아니고, 꼭 어딘가 익숙한 배 아픔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볼일은 보고 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눈을 떴다. 죽음을 결심했으나 마음만은 소녀였던 정선이는 죽은 모습이더라도 더럽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살살 아파지는 배를 부여잡고 들판에 하얗게 피었던 메밀밭으로 내 달렸다.


메밀은 땅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 심든 잘 자란다. 춥고 척박한 정선이의 고향 사람들은 감자와 메밀, 그리고 들깨, 참깨를 즐겨 심어 먹었다. 메밀밭에 앉아 아랫배를 움켜잡고 젖 먹던 힘까지 줬다. 마지막 티끌까지 다 쏟아내고 죽기 전에 마직 막을 깨끗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녀의 내장 속에 웅크리고 있던 오래도록 썩고 묶은 듯한 찌꺼기들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은 쾌감이 들었다. 시원하기까지 했다. 정선이는 무식적으로 자기 배속에서 빠져나온 배설물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기절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죽음을 결심한 소녀에게 죽음보다 더 두렵고 충격적인 모습이 소녀의 내장 속에서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엄마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고 징그러운 그것의 실체는 다름이 아닌 정선이의 뱃속에서 나왔다. 도대체 몇 년 동안 혹은 얼마 동안 정선이 뱃속에서 정선이 함께 먹고 마셔왔는지 모를 이 징그럽고 괴이해 보이는 것의 실체는 다름 아닌 기생충이었다. 하얗고 기다란 것들이 징그럽게 뒤엉켜 있는 모습은 죽음보다 두렵고 괴이했다.


조금 전 죽으려고 물을 떠 마셨던 두레박에 걸려 넘어지며 정선이는 앞으로 달렸다. 죽음을 생각했던 정선이는 바로 전에 자기가 했던 행동을 까맣게 잊었다. 정선이가 자기가 싸지른 배설물과 멀어지려는 집념으로 계속해서 내 달렸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정선이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아버지가 정선이를 나무랐다. 두 동생을 두고 몇 시간 동안 밖을 나가 헤맸으니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얼마 전 엄마를 잃은 정선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았다. 그 후 정선이는 다시 그 우물가를 찾지 않았다.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정선이에게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얼른 빨리빨리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이를 채워서 시집을 가서 이 집안 문턱을 넘어서는 것만 유일한 희망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소녀의 운명 또한 희비가 엇갈리면서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이 소녀, 정선의 운명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정선이는 그때 우물가에서 죽어버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인생을 살아 냈을까? 아니면 살아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본인의 삶을 채워왔을까? 그 정선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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