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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Nov 27. 2023

두만강의 겨울 2

'땅'의 눈물

 경원군 하면리는 두만강 벌을 중심으로 논밭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동쪽으로는 두만강 하류가 바다처럼 펼쳐 있었다. 두만강물이 해마다 날라다 쌓아주는 토사들이 해를 거듭하며 쌓이고 덧 쌓여 넓은 평야를 형성했다. 지평선이 닿도록 비옥하고 평평한 토지는 일제에게 배운 농업 기술로 갈대만 자라던 뻘을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로 개간을  것이다. 뚝을 만들고, 두만강 물을 대 논을 만들었다. 남쪽에는 낮은 야산들이 오목조목 들어서 있고 봄이면 하얀 들꽃을 피우고 그 사이마다 듬성듬성 연분홍빛 진달래가 군락을 이뤄 산을 곱게 물들였다.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마을들이 사이좋게 모여있었다. 해마다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장마가 요란하게 지는 해이면, 여름철에는 홍수가 범람해 하면리 지역의  논밭을 한 번씩 휩쓸고 갔다. 정선이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면 짚으로 엮은 우장을  쓰고 삽을 메고 논에 나가 이 논 저 논 돌아다니며 논밭에 벼가 잘 자랄 수 있게 물의 균형을 맞춰줄 수로를 뚫기도 하고 막기도 하며 물을 관리했다.


정선이 아버지는 엄마 잃은 마음추스를 시간도 못 가진 채 늘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 역할을 맡아하는 정선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정선이 아버지에게 정선이는 난생처음 안아 봤던 귀한 딸이었다. 그리고 정선이에게서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선이 할머니가 딸년이라고 아무리 구박을 해도 정선이 아버지에게는 곱고 소중한 딸이었다. 정선이 아버지가 새 장가를 서두른 데는 이런 이유들도 있었다. 정선이의 짐을 덜어 주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정선이 아버지 재혼상대로 분희만큼 훌륭한 혼처도 없었다. 분희는 얼굴이 곱기로 하면리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초가삼간에서 모녀가 삯바느질로 입에 풀칠을 겨우 할 만큼 가난하긴 했지만, 몰락한 양반 가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분희는 가늘고 여리고 단아한 여성이었다. 희고 둥근 얼굴과 빨간 입술이 특징이라고 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만 심성이 곱다는 소문도 있었다. 정선이 아버지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문이었다. 정선이 아버지는 젊고 고운 여자인 분희가 마음에 들었다. 이 혼사는 분희에게 도 좋은 소식이었다. 분희가  정선이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면, 흰쌀 밥도 먹을 수 있고 정선이 아버지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은 곡식으로 홀어머니를 부양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희는 곧 세상이 뒤집힐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땅 부잣집에 시집을 가게 됐다 들떠 있었다. 자신이 땅 부잣집에 시집을 가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혼사는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어른들의 결정에 어린 정선이의 의사는 내 비출 틈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와 분희 언니 혼인식 날 정선이는 몰래 방에 틀어박혀 엄마의 유품을 만지며 조용히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고생만 하다 이승을 등진 엄마 생각을 하니 어린 정선이의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것 같았다. 정선이 어린 가슴에 얹힌 이 무거운 돌덩이는 정선의 삶의 곳곳을 누비고 따라다닐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가벼운 마음도 들었다. 이제 두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되니,  이제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가운 기대도 있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번듯하게 지은 기와집에서 엄마는 두 해를 더 살다 갔다. 그 집 마당에서 정선이 아버지와 분희 언니가 곧 혼인식을 할 것이다. 엄마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들이 닭장에서 밤마다 꼬꼬댁 울었다.  


정선이는 우는 동생들을 내 팽개치고 매일 아침 닭장에 가서 닭 모이를 줬다. 엄마의 냄새가 묻어 있던 닭 들이라 애지중지 돌보았다. 그런데 그 소중한 닭들이 며칠 전 족제비 습격을 받았다. 족제비들이 어미닭들의 목을 물어 네 마리나 죽였다. 정선이는 죽은 닭들을 붙잡고 목 놓아 울었다. 엄마가 돌보던 닭들의 죽음에 눈물을 뿌리며 엄마 잃은 설음을 풀어냈다. 정선이 아버지는 그 닭들 중에서 가장 큰 닭을 잡아 잔칫상에 올렸다. 엄마가 종살이해 가며 모은 돈은 이제 분이 언니가 다 쓰게 생겼으니 엄마는 고생만 하다 간 꼴이다. 정선이는 분희 언니 얼굴만 보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정선이 아버지와 분의 언니는 그렇게 혼인을 했고 부부가 되었다. 분의 언니는 정선이를 동생처럼 엄마처럼 살갑게 대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정선이도 분희 언니를 알고 있었던 터라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 분의 언니는 달갑지 않았다. 분희 언니가 다가갈수록 정선이는 분희 언니를  소 닭 보듯 무시했다.


그렇게 이듬해가 되었다. 정선이 아버지와 분의 언니는 부부 금슬이 넘쳤나 보다. 곧 분희 언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분희 언니의 젊음은 아버지에게 욕망과 애정으로 불타게 했다. 그래서 혼인한 지 일 년도 채 안 돼서 곧 아들을 낳았다. 정선이 할머니는 젊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자 어화둥둥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온 집안의 권력이 갓 태어난 갓난쟁이 아들에게 옮겨 가는 것 같았다. 그 덕에 분언니의 집안에서의 입지도 높아지는 것 같고, 나날이 기세등등해졌다. 전에는 정선이 눈치라도 살폈지만, 이제는 분 언니도 정선이를 소 닭 보듯 하는 것 같았다. 정선이와 분 언니의 관계는 정선이 아버지에게 큰 골칫덩어리였다. 정선이네 집안일로 정신이 없을 무렵 경원 군은 공산정권이 들어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정선이 아버지는 분희 언니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늘 논에 나가 있었다. 정선이 아버지는 '벼농사는 뼈 농사다'라고 말하고 여름마다 어깨에 삽 한 자루 메고 논두렁을 걸어 다니며 물을 대고 물을 빼고 벼 이삭 한 이삭 한 이삭 땅덩이 한 조각 한 조각 자식 대하는 소중하게 다뤘다. 아버지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늘 검었고, 손마디들은 굵어져 울퉁불퉁했고, 살결은 다 터져서 피가 흐를 때도 있었다.


정선이네 마을에는 농민위원회라는 회관이 들어섰다. 머슴이나 종살이를 하던 동네 사람들이 리의 농민들의 회의를 주관한다고 하면서 돌아다녔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혈연으로 얽힌 가족이 많았다. 서로 얼굴도 다 알았다. 정선이는 경원군을 인접한 하면리에서 살았는데, 동쪽은 두만강을 경계로 송화성이 있었다. 서쪽으로는 종성 군, 남쪽으로는 경흥군이 있었고, 북쪽으로는 한반도의 최북단인 온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원 군은 척박한 한반도 북방에서도 유일하게 '옥밥 지어먹을 수 있고, 겨울에 참나무를 땔 수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경원은 토지가 비옥하고 농사가 잘 됐다.  북방 지역에서 흔치 않게 쌀농사가 되는 몇몇 안 되는 지역 중에 하나로 꼽혔다. 정선이네는 경원군 하면리 토박이로 그 주변 하면리와 경원군 일대에 친척들이 두루 거주하고 있었다. 하면리에는 사돈에 팔촌까지 따진다면 정선이와 먼 친 적으로라도 엮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작은 마을에서 난리가 났다. 툭하면 계급이 투쟁이 벌인다고 하면서 과거에 부유했던 사람들을 광장 중앙에 세워놓고 비판하고 조롱했다.


정선이도 동생을 등에 업고 동네 공터에 가서 계급 비판을 당하는 이웃 오라버니를 봤다. 정선이의 참여가 강제는 아니었는다. 정서는 나름대로 평화롭던 동네가 매일이다시피 시끄럽고 혼돈에 빠지는 게 대체 이유가 뭐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정선이가 참여했던 그날 하필이면 얼굴을 알고 있던 이웃 마을 오라버니가 마을회관 중심에서 가족들과 떡 하니 서 있었다. 이웃 오라버니의 이름은 영식이었는데 아버지가 이 지역 일대에 비옥한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새로 들어섰다는 정부에서는 유산계급을 청산 대상으로 삶았다. 영식이 오빠네는 머슴도 있었고, 소작농들도 여럿 두고 있었다. 그날은 영식이 오빠네 집에서 머슴으로 살던 정선이네 사돈에 팔촌쯤 되는 먼 친척뻘 오빠가 연단에서 너덜너덜한 종이 위에 적힌 글을 듬성듬성 읽어 나갔다.


"지주 놈들은 우리 근면한 농민들에게서 7:3에 소작료를 받아 갔습니다. 7:3이요. 거꾸로가 아닙니다. 농민위원회에서는 우리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5:5 아니고 거꾸로 3:7 그러니까 농사를 열심히 지으면 7할을 농민들이 가지고, 3할을 나라에 바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주 놈들은 우리에게 7:3이나 받아 갔으니 착취를 해갔다 그 말입니다. 저 영식이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영식이 놈은 악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놈 친일 부역자입니다. 일본 놈들과 한패를 먹었습니다.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고 매일 매질을 했습니다. 음.. 매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는 영식이 아버지에게 귀뺨을 맞았습니다. 내가 심부름을 쪼금 잘 못했다고 나를 팼습니다. 이 악질 지주 놈들은 우리 농민 계급의 원수입니다.  ' 친척 오빠는 영식 오라버니를 한번 힐끗 보더니, 짧은 숨을 한번 내쉬더니, "그래도 영식는 그렇게까지 악독하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말을 번복했다. 말을 마치자 삽시에 군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영식이네 가족은 온 동네를 끌려다니며 창피를 당해야 했다. 정선이가 동무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돌팔매질도 당했다고 한다. 온 동네를 털어서 가장 멋진 남정네라 생각했던 영식이의 허여 멀끔한 얼굴은 얼마 못 가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영식이네는 소유했던 토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빈농이 되었다. 그 난리 통을 겪어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정선이도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정선이는 무엇보다 분희언니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타고난 천성인지 말이 별로 없는 분희 언니의 속마음은 정선이 아버지 외에는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분희는 동네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맡은 집안일만 해냈다. 정선이는 분희 언니가 혹시나 딴마음을 품지는 않을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분희 언니가 하고 있는 일이 집안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했고, 혹여나 언니가 집을 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까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민위원회라는 데서 사람들이 나왔다. 농민위원회 사람들의 대 부분은 정선이 아버지와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라에서 정선이 아버지 소유의 땅 일부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정선이 아버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내 죽은 마누라 입에 온전한 음식 한번 못 넣어 보고 마련한 내 땅을 나라에서 왜 가져 간단 말이오? 억울하오!" '억울하오!' 정선이 아버지는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면서 통사정을 했다.

정선이 아버지와 한참 실랑이질을 하던 농민위원회 사람들은 그날 그렇게 돌아갔다. 정선이 아버지는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누웠다. 그 아끼던 논밭도  돌보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집 밖을 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정선이 아버지 고종사촌이 정선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사촌은 정선이 아버지를 설득했다.


'형님! 형님은 부농도 아니오. 땅이 중농보다는 조금 많고, 부농보다는 많이 적소.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오. 형님이 땅을 지주만큼 가지고 있었으면 영식이네처럼 계급 청산 대상이오. 우리는 부농도 좋게 보질 않소. 중농까지는 그럭저럭 봐주오. 형님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우리 농민위원회에서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거외다. 그러니 버티지 말고 일부를 내놓소. 그게 형님도 분희도 정선이도 줄줄이 딸린 애들도 살리는 길이오. 세상이 바뀌었소! 세상이 뒤집어졌단 말이오. 명심하시오.'


정선이 아버지도 이에 지지 않으려는 듯 이를 악물고 대들었다.


'부농이든 중농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안 먹고 안 입고, 내 새끼도 안 먹이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그냥 내놓으라니 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소? 내가 이 땅을 어디서 훔쳐 왔소?. 나는 피땀 흘려 일하고, 안 먹고 안 쓰고 아낀 죄밖에 없소. 공산당에겐 그게 죄라도 된단 말이오?'


'우리 농민위원회에서 중농까지는 봐주오. 소농, 중농은 계급의 원수로 보지 않소. 그러니 적당히 내놓고 나머지라도 알차게 가꿔보시오. 형님 그런 거 잘하지 않소. 사실 중국과 소련의 지주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지주들은 중농도 안 되오. 농민위원회에서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경한다 들었소. 그러니 빨리 결정하시오. 버텨서 좋을 것 없소.'


정선이 아버지는 곰방대를 들어 재떨이에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그렇게 정선이 아버지는 자식보다 더 아끼던 금쪽같은 땅 일부를 나라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정선이 아버지는 그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뒷방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담배만 태웠다. 정선이가 아버지 진지를 챙기려 뒷방을 들여다보니, 무슨 곰 굴 같았다. 아버지가 방문을 닫아 건채 담배를 얼마나 태웠는지 방 안이 온통 하얀 연기로 뿌옇게 뒤덮여 있었다.


분희를 탐내던 동네 총각들 중에 원철이라는 총각이 있었다. 원철이는 머슴 출신이었다. 땅 많은 정선이 아버지에게 시집간 분희에게 앙금을 품었던 원철이는 노동위원회에 찾아가 정선이 아버지를 고해바쳤다. 정선 아버지가 시켜서 정선이 어머니가 죽기 전에 친일파를 했다고, 그렇게 모은 더러운 돈으로 땅을 사서 부농이 되었다. 농민위원회에서 아무리 계산해 봐도 정선이 아버지가 소유한 땅 평수는 부농이 되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정선이 아버지는 몇 차례 더 농민위원회며 인민위원회며 불려 다니며 친일파에 대한 전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딱히 혐의가 별로 없었던 터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농민위원회에서 풀려나온 정선이 아버지는 땅을 잃고 말도 잃었다. 엄마 잃고 새엄마와 갈등을 빚고 있던 정선이를 살뜰하게 챙기려고 노력했던 아버지였다. 인민위원회에 갔다 오고는 정선이가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늘 먼 산만 쳐다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선이가 크게 앓았다. 고열이 났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정선이 아버지는 다 큰 정선이를 들춰 엎고 경원 읍까지 걸어가서 '소문난 침쟁이 의사'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정선이를 등에 업고 걸으며 '우리 정선이 언제 이리 컸지. 쪼끄맸었는데, 이제는 무거워졌다. 우리 정선이 아버지가 금방 게 해 줄 거야.'라고 연신 읊조리며 시내까지 20리 길을 정선이를 엎고 걸었다. 아버지의 등 뒤에 업혀있는 정선이 코로 낯익은 아버지의 냄새가 풍겨왔다. 땀에 절여지고, 흙과 물에 절여진 냄새, 분명히 향기로운 냄새는 아닌데 따듯한 냄새였다. 그 냄새가 싫지가 않았다.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젊은 분희언니와 재혼을 했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선이가 마음 놓고 의지할 사람은 아버지뿐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했다. 정선이 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대륙의 문턱에 살고 있는 북쪽 사람들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정선이 아버지도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고 하면서 정선이 어머니가 죽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정선이도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정선이 아버지 분희언니를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아들을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둘째를 낳았다. 또 아들이다. 분희 언니는 이제 더 이상 언니가 아니었다. 두 아들의 엄마였다. 정선의 동생들도 친자식만큼은 아니겠지만, 다르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둘째가 태어날 즈음 가세가 기울었다. 소출은 늘었으나, 나라에 바치는 알곡 냥이 늘어 그냥저냥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식량만 남았다. 분의 언니는 매일 다섯 아이의 빨래를 이고 두만 강가에 나가 방치로 쾅쾅 두드려 빨았다. 분 언니의 그날그날의 기분은 빨래 방망이 소리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분 언니가 기분 좋은 날은 빨래 방망이 소리도 경쾌했다. 분의 언니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빨래 방망이 소리가 얼마나 큰지 옷감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 힘차게 두드렸다. 분 언니는 수더분하고 수다스럽지 않았다. 가끔가다 꼭 필요한 말만 한두 마디 하는 사람이었는데  쓸모없는 말이 한 마디도 없었다.


어느 날 정선이 아버지는 읍에 갔다 새끼 염소 한 마리, 그리고 양 한 마리를 끌고 왔다. 염소와 양을 매일 아침 들판에 옮겨 놓으며 부지런히 먹였다. 공산당은 염소와 양은 뺏지 않았다. 집에 토끼도 키웠다. 그리고 닭도 키웠다. 공산당은 토끼를 뺏지 않았다. 닭도 뺏지 않았다. 정선이 아버지가 논에 나가는 날이면 정선이와 동생들이 함께 마을 뒷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풀이 많은 공터에 염소와 양을 옮겨 맸다. 정선이는 동생들과 산에서 들풀들을 베어다 토끼들에게 나눠주고 분희 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봤다. 정선이도 분의 언니도 그렇게 한집 식구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이 작은 한반도 땅에  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남쪽에서 쳐들어 온다고 했다. 분희와 정선이 아버지는 금술도 좋지. 그 무렵 셋째를 낳았다. 또 아들이었다. 셋째를 낳기 몇 달 전 정선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정선이는 할머니가 곱지 않았다. 고생만 하다 저세상에 간 엄마에게 '팔자 탓'이라고 젊은 처녀 만나 잘 살아갈 아들 걱정만 했던 할머니가 미웠다. 막상 할머니가 숨을 거두고 장례 절차를 진행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슬픔인지 괴로움인지, 아쉬움인지 무엇이 정선이를 기분을 뒤흔드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엄마를 잃고, 할머니까지 잃으니. 정선이는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 괴로운 감정들을  할머니 탓으로 돌렸다. 미운 감정만 남아 있던 할머니였다. ' 저 노친네 노망 났네, 빨리 죽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막상 할머니가 떠나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이 집안에 그 밉상스러운 말만 해 대던 그 노친네가 버티고 있어 줘서 정선이와 정선이 동생들도 의지하고 살아 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족의 죽음이란 이미 겪어 봤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게 아니었다. 미운 사람이라도 가족이 죽는다는 건 정선이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정선이 마음엔 또 하나의 돌덩이가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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