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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Dec 07. 2023

두만강의 겨울 3

땅과 계급

하면리의 옥토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부유했던 영식이 아버지가 스스로 삶을 등졌다. 영식이가 대들보에 목을 매달고 죽은 아비를 끌어내려 가마니에 둘둘 말아 뒷산에 묻었다. 영식이네 집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었다. 하면리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집이 영식이네 집이었다. 방이 일곱 칸이라는 소문도 있고, 여덟 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 집 문턱은 마을 사람 아무나 넘을 수 없었으니 집이 얼마나 큰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초가 이영을 얹은 초라한 단칸방에서 온 집안 식구가 다닥다닥 붙어살며,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하면서 목숨을 연명할 때 영식이네는 번질번질한 마루에 들깨 기름을 부어 놓고 머슴들이 마른걸레로 하루종일 닦아 윤을 냈다. 흙을 발라 쌓아 견고하게 둘러친 담벼락에는 깨어진 유리병을 촘촘하게 박아 침입자들을 막았다. 인민위원회에서는 마을에게 가장 멋진 집이었던 영식이 아버지의 집을 몰수하여 인민위원회 임시 건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영식이 아버지 식구들을 내 보내고 그 길로 대들보에 목을 맸다.


영식이 아버지는 두터운 턱과 뻐드렁니가 인상적이었다. 영식이 아버지는 변덕이 죽 끓듯 하던 사람이었다. 하면리에서 영식이 아버지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집 밖으로 한발 작도 나올 수 없었다. 영식이 아버지는 변덕이 심했다. 영식이 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목숨을 구한 마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영식이 아버지가 기분이 좋을 때를 맞춰 잘 찾아간 마을 사람들은 조한 가마니라도 얻어 식구들과 풀 죽이라도 우려먹으며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영식이 아버지 기분이 나쁠 때를 맞춰 잘 못 찾아가면 피도 눈물도 없는 영식이 아버지의 모습을 구경했을 것이다. 그래도 영식네가 뒤집혀 버린 세상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정선이 아버지 윗방에서 곰방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내뿜었다. 내뿜은 연기는 천장으로 향했다. 정선이 어렸을 때 정선이 아버지는 담배연기로 원을 만들어 줬다. 담배 연기를 폐 속 깊이까지 들이마셨다가 푸하고 내뿜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푹푹 뿜어 내면 신기하게도 원이 연달아 만들어졌다. 정선이는 아버지가 재주넘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선이 아버지는 논이나 들로 헤매던 과거와는 달리 자주 집에서 배다른 어린 정선이 동생들과 담배연기로 원 만들기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밖에는 비가 추적처적 내리고 두만강 바람까지 기승을 부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았다. 정선이 아버지 고종사촌이 찾아왔다. 인민위원회에서 무슨 위원장을 한다고 했다.  진흙 묻은 바지를 왼손으로 툭툭 털며 흙탕물에 뒤범벅이 된 누더기 같은 신발을 벗어 버리고 마루를 지나 윗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지니고 있던 곰방대에 잎담배 몇 조각을 꺼내 채우며 말했다.


'형님. 영식이 아버지가 지난밤에 목을 맸다오."

'나도 들었네. 그래. 이제 후련한 겐가?. 자네들이 만든 세상은 참 보기가 좋구려!.'

'형님 우리는 착취받는 사람도 없고 착취하는 사람도 없는 그런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오.  대의를 위해서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거요.'

'그렇다고 사람을 묶어놓고 돌팔매질을 하는가? 공산당은 배은망덕해도 되는 거요. 영식이 아버지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이 마을에 어디 한둘이오.? 자네 어머니도 자네를 낳고 피골이 상접해서 다 죽어 갈 때 영식이 아버지가 군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먹고 기운을 차렸네. 어디 그뿐인가? 지난봄 영식이네 논두렁에 총상을 입은 젊은 독립군도 데려다 움에 숨겨 놓고 먹이고 치료해서 기운을 차리게 해 줬다네. 영식이 아비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성미인 건 내가 안다만은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네. 가진 재산이 많다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법은 없다네. 일본 놈들도 그렇게는 안 했네.'

'형님! 지금은 세상이 바뀌는 중이요. 일본 놈과 붙어먹던 놈들과 땅을 돈으로 우리를 지배하던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소. 이건 피할 수 없는 투쟁의 과정이오.'

'네 이놈, 머슴이 지주가 되면 더 악독하다고 하더니. 네놈이 그놈이구나. 그런 염병할 소리만 지껄일 거면 내 집 문턱을 함부로 넘지 말라!'


정선이 아버지는 곰방대에서 타나 남은 재와 담뱃잎이 섞인 불순물을 재떨이에 툭툭 털어 내며 말을 퉁명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영식이네는 지금 어디 있는 겐가?'

'인민위원회에서 지낼 곳을 마련해 줬네. 그놈이 청산 대상이기는 하지만, 지낼 곳도 내줬소.'

'그럼 영식이 아버지는 어떻게 할 셈인가?'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는데 죽긴 왜 죽어가지고 내 마음도 불편하오.'


그날 저녁 정선이 아버지는 정선이를 데리고 영식이네를 찾았다. 허여멀건 얼굴에 짧은 서양 머리를 하고, 늘 화사한 웃음을 띠며 마을 여자들의 환심을 얻던 영식이 얼굴에는 창백함만 남아 있었다. 다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에 할 말을 잃은 노모와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형과 누나가 있었다. 형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고, 누나는 시집을 가 만주에 있었다. 정선이 아버지 아무 말 없이 영식이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정선이 아버지 자루 속에서 술 한 병을 꺼내서 한 모금했다. 그리고 술병을 영식이에게 건넸다. 영식이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술병을 받아 들고는 만지작 거리만 했다.


'마을을 떠나는 게 어떤가?'

영식이는 술병을 내려놓고 정선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 두만강을 넘어가면 중국입니다. 그쪽도 공산이 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그쪽도 공산당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려니 너무 멉니다. 가다가 죽게 생겼습니다. 나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 곳에 끼어 있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없습니다.'

정선이 아버지는 영식이 등을 툭툭 쳤다. 그러고는 꼬인 혀로 발음을 가다듬으며 횡설수설 말했다.

'그래도 죽지는 말게나.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지 않나. 살아 있다 보면은.... 산다는 게 볼꼴 못 볼꼴 다 보게 되겠지만, 살아 있다 보면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인생이 고통이라는 말이 있네.... 고통이라는 놈도 자꾸 씹다 보면은 단 맛이 날 때가 있다네.. 자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고통에 대해서는 일각연이 있네.... 그러니 우리 견뎌 봄세. 살아 있어야 하네. 그래야만 하네.'


영식이는 유난히 하얀 이빨로 붉게 상기된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채 넋이 나간 듯한 무덤덤한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를 가마니때기에 대충 싸서 묻었습니다. 죽은 개를 묻듯 아버지를 묻었습니다. 장례도 치르지 말랍니다. 아버지의 시신에서는 배설물이 사방으로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내 두 손으로 그 똥물을 치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코를 막고 있었지만, 나는 냄새도 안 났습니다. 인민위원회에서 내 집을 써야 하는데 내가 가서 치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 집이 아니군요. 이 나라에 내 것이란 없습니다.'

정선이 아버지는 긴 한숨을 뿜어내며 술병을 입에 댔다. 정선이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가장 길게 그리고 가장 많이 말을 한 날이었다. 정선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시대의 격변기를 겪어 내느라 정선이 아버지도 나이 40에 인생의 격변기를 겪어내고 있었다. 정선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정선이는 아버지와 영식이 오라버니가 나누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는 없었으나 어렴풋하게 이해는 됐다. 영식이 오라버니의 처지가 딱하고 한스러웠다. 정선이는 영식이 오라버니의 곱기만 하고 멋지지만 했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을에 유일한 도련님이었고, 경성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었다. 영식이의 허여멀겋고 기다란 손가락은 아버지의 손가락 마디마디  굵게 튀어나온 뼈마디들은 북방이 산골의 대지가 남긴 흔적과 대비를 이뤘다. 그날 밤 정선이 아버지가 가져갔던 술은 정선이 아버지가 다 마셨고 취했다. 정선이에게 몸을 의지해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집으로 왔다.


분희 언니가 낳은 배다른 남동생 셋은 늘 정선이 차지었다. 분희 언니에게 가끔 괘씸한 마음도 들었지만, 분희 언니도 하는 일이 많았다. 여섯 식구를 돌보는 일이 여인 혼자의 몸으로 다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맏딸 정선이가 의무적으로 동생들을 챙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정선이는 분의 언니가 낳은 막대 동생들 포대기에 싸서 등 뒤에 업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겨우 뗀 두 동생을 돌봤다. 정선이에게는 이 마을에서 가장 친한 소꿉동무 옥순이가 있었다.  옥순이로 말하려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 아비 밑에서 툭하면 얻어맞으며 컸다. 옥순이 어머니는 영식이네 집에서 부엌일을 돌보며 홀로 벌어 주정뱅이 남편과 옥순이 그리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일상이 눈물 바람이던 이 마을 대표적인 가난뱅이 출신이었다. 인민위원회에서 좋아한다는 핵심계층 중에 하나인 머슴과 빈농 들이었다. 요즘 옥순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뙤기 받 한 조각 없던 옥순이네 집에 땅이 생겼으니 말이다. 이제 이 마을의 모든 최신 소식은 옥순이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옥순이네는 천지가 개벽된 셈이었다. 옥순이는 이 세상이 퍽 마음에 드는 눈 치었다.


정선이는 등에 업혀있는 이북 동생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짚으며 옥순이에게 물었다.

'땅이 생겨 좋겠다.?'


옥순이가 허름한 집신에 묻은 모래를 털며 말했다.

'인민위원회는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편 이래.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줬어. 그 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짓고 적은 양만 나라에 바치고 나머지는 우리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 준대. 땅만 있으면 우리 식구 배곯지 않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니? 난 새 정부에 고마울 뿐이야. 난 공산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거야. 영식이 오라버니한테는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잖니. 마을 사람들이 굶주릴 때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응당한 대가라고 생각해. 그래도 영식이 오라버니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오라버니 가족들을 광장에 세워 놓고 창피를 준거는 나도 보고 있기가 힘들었어. 하지만 그들은 순순히 땅을 내놓지 않았겠지. 아버지가 그러는데 공산당은 아주 좋을 거랬어. 공산당이 하는 건 다 맞는 거라고 했어.'


인민위원회에서는 주정뱅이 옥순이 아버지를 데리고 하면리 인근에 인접한 마을들을 다니며 연설 모임을 한다고 했다. 옥순이와 정선이의 우정에는 뒤집어진 세상을 거둬내면 뒤에 남아있는 순수함이 있었다. 옥순이는 정선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 인민위원회에서 노래를 보급한다고 했다. 그리고 야학도 조직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는 조선글을 쓸 수 없는 문맹자가 반은 되었다. 워낙에 반도에서도 후미진 지역이라 지난 세월 시도 때도 없이 이민족의 침입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왜정을 거치며 경원군 일대의 조선어에는 일본어가 스며들었고,  중국을 인접한 국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국어도 스며들었다.


나라에서 야학을 만들어 '문맹 퇴치 운동'을 진행한다고 했다. 하루 일을 마친 후 저녁시간에 조직되는 일과라 남녀노소 글을 익히고 배울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정선이는 당장에 야학으로 달려가겠다고 옥순이와 약속을 했다. 정선이는 조선말과 글을 완벽하게 익혀 인민위원회에서 새로 만들어 보급하는 노래들을 배우고 싶었다.


새로 들어섰다는 정부에서 만들어서 배포하는 노래가 정선이는 썩 마음에 들었다. 노래 리듬이 신이 났다. 공산정권이 만들었다는 노래들은 들으면 부르고 싶고 부르면 걸음이 빨라지고, 일손도 빨라지고 막 힘이 샘솟듯이 올라왔다. 그 곡조가 낯설지만 예전 것과 다르고 새롭고 신이 났다.


정선이는 야학이 시작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막냇동생을 분희 언니 손에 떠 맡기고 부리나케 달려 옥순이네 집으로 향했다. 옥순이네 집은 문밖에서부터 잔칫집처럼 소란스러웠다. 마을의 빈농으로 소문났던 아저씨들이 인민위원회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슨 토론이라도 하는 건지 웃음소리에 구호 소리에 토론 소리가 섞여 들렸다. 옥순이는 여기저기 찢어진 창호지가 위태롭게 매달린 출입문을 열고 생긋 웃으며 나왔다. 옥순의 얼굴은 활기차 보였다. 깨끗한 하얀 고무신을 신고 검은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겨드랑이에는 공책도 끼고 나왔다.


정선이와 옥순이는 손을 잡고 옛 과수원과 두만강 벌을 경계로 높이 솟은 둑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선아 너는 크면 뭐가 될 거야?'

정선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글쎄.. 내가 뭐가 될 수 있으려나... 넌?'

'나? 울 아버지가 그러는데 난 이 마을 여자들 중에서 아주 큰 사람이 될 거래. 그리고 꼭 조선글과 말을 잘 익혀야 된대. 인민위원회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려주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줄 거래.'

옥순이는 동무에게 자기 자랑질을 지나치게 한 것 같은지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말했다.

'정선아. 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까. 가수가 되어 봐.'

정선이는 옥순이의 제안 마음에 들었다.

'가수?! 그럼 참 좋겠다. 나도 가수가 될 수 있으려나? 옥순아 난 노래 부를 때가 제일로 좋아.'

정선이와 옥순이는 둘만의 우정의 시간들을 쌓으며 둑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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