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무언가를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그때그때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제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다음으로 좋은 것을 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에서다. 오히려 좋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챙겨둔다. 그중 하나가 연말 연주회 감상이다. 2023.11.25. 세종 예술의 전당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를 일찌감치 예매해뒀다. 왜 연말이냐 하면 쌀쌀한 바깥바람을 서두른 걸음으로 지나쳐 들어온 뒤, 객석에서 맞이하는 정돈된 분위기와 살짝 들뜬 공기가 좋기 때문이다. 어느새 휩쓸리 듯 다다른 연말즈음에 잠시 고르는 숨이 좋아서다.
< 붉은 돼지 > O.S.T '돌아오지 않는 날들'은 왜 없는가.
큰북소리가 연주회 시작을 알렸다.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가 지휘하다가 본인 파트에서 연주하는 방식이 돋보였다. 피아니스트가 지휘를 하다가 피아노에 앉아 다들 기대하는 파트를 연주하기 위해 건반 위에 손을 얹었을 때,나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어느 여름날', 'Always With Me'처럼 유명한 곡이 연주될 때면 관객석은 연주에 빠져 들어 더욱 고요해졌다. 근처 중년 아저씨부터 이웃집 토토로를 알아보는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선율은 내 삶 곳곳에도 스며있었다. 동생과 <모노노케 히메> 비디오를 빌려 집으로 오던 길 동네 골목길의 바람이 불어왔다. 외갓집에서 옹기종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볼 때 거실을 채우던 추석 연휴의 포근한 볕이 떠올랐다. 도시락을 먹은 뒤 약간은 느슨해진 재수학원의 여름저녁 공기도 '인생의 회전목마'와 함께 빰에 스쳤다. 옅게 남은 전날 숙취를 느끼며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던 대학교 여름방학의 여유도 그대로였다.
연주회가 내게 색다른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가 주는 간극에 있다. 연주자와 나는 각자의 과거를 지나 현재 우연히 교차한 상황이고, 어쩌면 다시 만날 일이 없다. 이 짧은 순간 내 눈앞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은 그 어느 때보다 현재임을 자각케 한다. 동시에 그 선율들은 내 과거를 불연속적으로 소환한다. 현재를 절실히 실감하면서도 과거를 보는 순간이 경이롭다. 관객 모두 지브리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도드라졌을 것이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 아쉽다.동시에 돌아올 수 없는 절대불변의 시간이 되었기에과거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떠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렇게 기억은 추억이 된다.
... 한순간에 우리는 그곳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가 그 순간을 혹은 삶 전체를 다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종류의 회상은 늘 뜻밖의 순간에 찾아와서는 과거와 현재를 융합시키고 둘 사이의 차이를 무효화하며 이미 죽었던 존재를 소생시킴으로써 우리를 시간 밖으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