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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Dec 03. 2023

지금을 듣고 그때를 본다.

< 2023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 감상

대개 무언가를 미리 정해두지 다. 그때그때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제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다음으로 좋은 것을 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에서다. 오히려 좋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챙겨둔다. 그중 하나가 연말 연주회 감상이다. 2023.11.25. 세종 예술의 전당 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를 일찌감치 예매해뒀다. 왜 연말이냐 하면 쌀쌀한 바깥바람을 서두른 걸음으로 지나쳐 들어온 뒤, 객석에서 맞이하는 정돈된 분위기와 살짝 들뜬 공기가 좋기 때문이다. 어느새 휩쓸리 듯 다다른 연말즈음에 잠시 고르는 숨이 좋아서다.

< 붉은 돼지 > O.S.T '돌아오지 않는 날들'은 왜 없는가.


 소리가 연주회 시작을 알렸다. 피아니스트첼리스트가 지휘하다가 본인 파트에서 연주하는 방식이 돋보였다. 니스트가 지휘를 하다가 피아노에 앉아 다들 기대하는 파트를 연주하기 위해 건반 위에 손을 얹었을 때, 나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어느 여름날', 'Always With Me'처럼 유명한 곡이 연주될 때면 관객석은 연주에 빠져 들어 더욱 고요해졌다. 근처 중년 아저씨부터 이웃집 토토로를 알아보는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선율은 내 삶 곳곳에도 스며있었다. 동생과 <모노노케 히메> 비디오를 빌려 집으로 오던 길 동네 골목길의 바람이 불어왔다. 외갓집에서 옹기종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볼 때 거실을 채우던 추석 연휴의 포근한 볕이 떠올랐다. 도시락을 먹은 뒤 약간은 느슨해진 재수학원의 여름저녁 공기도 '인생의 회전목마'와 함께 빰에 스쳤다. 옅게 남은 전날 숙취를 느끼며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던 대학교 여름방학의 여유도 그대로였다.


연주회가 내게 색다른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가 주는 간극에 있다. 연주자와 나는 각자의 과거를 지나 현재 우연히 교차한 황이고, 어쩌면 다시 만날 일이 없다. 짧은 순간 내 눈앞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은 그 어느 때보다 현재임을 자각케 한다. 동시에 그 선율들은 과거를 불연속적으로 소환다. 현재를 절실히 실감하면서도 과거를 보는 순간이 경이다. 관객 모두 지브리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도드라졌을 것이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 아쉽다. 동시에 돌아올 수 없는 절대불변의 시간이 되었기에 과거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떠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렇게 기억은 추억이 된다.

... 한순간에 우리는 그곳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가 그 순간을 혹은 삶 전체를 다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종류의 회상은 늘 뜻밖의 순간에 찾아와서는 과거와 현재를 융합시키고 둘 사이의 차이를 무효화하며 이미 죽었던 존재를 소생시킴으로써 우리를 시간 밖으로 데려간다...

- 미하엘 하우스겔러의 <<왜 살아야 하는가>> 중 -


연말 연초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일정


* 당연한 인생의 회전목마 :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 히사이시 조

https://youtu.be/Pa5Rff7L5OM?si=ciR5v41E37YoYSvl


* 표지 사진 :  unsplash - Xingye J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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