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써야 하는 글이 있다. 실패에 대한 예감 없이는 쓸 수 없는 글, 자꾸만 연막을 치고 안개를 피우고 변죽을 울리고, 그러다 독백에 그치고 마는, 으레 그럴 줄 알면서도 부쩍 허약해진 소설을 끝끝내 붙잡고 있는 사람이 한 고비를 넘어가는 심정으로 감당해야 하는, 그런 글....... 이 소설은, 말하자면 그런 유의 글이다. 나는 끊긴 길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수렁에 빠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 미련과 집착이 나는 두렵다. 알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것이 나의 영혼을 운무처럼 둘러싸고 있다.
- 『生의 이면』 의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