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단골 카페에 갔다. 매주토요일원두를 사고 드립커피도 주문한다.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순간의분위기와 커피맛을 적어둔다. 사진을 확인하려 구글 포토 어플을열었더니 AI편집 기능이 보였다. 새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추가된 기능이었다. '생성 중...'이라는 문구 후에 내 사진은 그림이 되었다. 터치할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 생성되었다.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내 그림인가? 내가 이 그림을 따라 그리면 그 그림은 내가 그린 내 그림인가?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아트 부문 1등은 AI의 Theatre D'opera Spatial가 차지했다. 텍스트 한 줄만으로 AI가순식간에 그렸다고 한다. 음악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
출처 : 김형석 작곡가의 X 포스팅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바둑을 1:4로 패배했을 때만 해도 AI가 인간의 창조성은 따라올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도 AI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창조성은 기존 지식과 정보를 재편집한 결과라는 김정운 교수 말을 상기해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AI도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니까. 오히려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효율적으로 학습하니까. 심지어 최신 AI 모델은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 결과들을 활용하여 또 학습한다. 학습의 복리효과다.
작년 가을에 들은 Chat GPT 활용 교육이 떠오른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글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능이었다. 글로 정교하게 표현할수록 원하는 이미지가 도출되었다. 올해 2월에는 오픈 AI가 글이나 이미지를 입력해서 동영상을 생성하는 AI 소라 기술을 공개했다. 인간이 머릿속에 있는 의식을 글로 잘 표현하기만 하면 그것을 실제 구현하기 위한 그림 그리는 기술은,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은, 영상을 촬영하는 기술은 AI가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AI 학습의 복리 효과를 적극 활용해야한다. 기존에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은 AI가 대체 가능하다. AI의 기술적 구현능력도 점차 정교해진다. AI 덕분에 인간은 창조적활동에 몰두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최신 논문 3개를 선별해 요약하는 단순 작업은 Chat GPT4로도가능하다. 예전이었다면 그 일은 교수가 조교에게 시켰을 것이다. 인간은 창조적인 의식활동에 몰두하고 단순 작업이나 기술적 구현은 AI에게 외주를 준다. AI가 발현한 창조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재창조할 수있다.
역으로AI도 인간을 활용한다.오늘 아침 샤워 때 구글 홈 미니(AI 스피커)는 내가 요청한 첫 곡을 바탕으로 두 번째 곡을 귀신같이 재생했다. 내가 듣고 싶었으나,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선곡이었다.어쩌면 구글이 내 신용카드 결제 리스트, 방문 기록,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통해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을지 모른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AI와 인간 사이 정체성과 역할이 점점 모호해진다. 유발하라리는 AI 기술 발전의 종착역을 신인류 등장이라고예견했다. 그는 『호모데우스』에서 미래 인간은 물리적 육체를 초월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AI고 AI가 인간이다.
인간과 AI 사이 정체성이 모호해질수록 인간다움이 중요하다. 인간다움이란 인간만의 종적 차별성이다. 인간의 종적 차별성은 문명이다. 문명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형성의 발자취다. 우리는 자아를 형성하고 타인을 인지한다. 인간은 타인을 인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에게 공감하며 공생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은 합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정치적 제도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인류의 종적 차별성인 문명이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AI가 인간 역할을대신할 것이다. 노동을 바탕으로 자본을 얻어 자원과 교환하는 기존 시스템도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점점 노동에서 멀어질 것이다. 인간은 기본소득에 의존해 소비자 역할만 할지도 모른다. 자본은 AI 기술을 소유한 소수 기술 대기업에게 몰릴 것이다. 노동과 자본 분배 시스템은 인류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인류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배제될지 아니면 해방될지는 시스템 재편 성격에 달렸다. 미래의 나도커피한잔의여유를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