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에 갈 기회를 엿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스웨덴 추리소설 밀레니엄 시리즈 6부작은 문체도 분위기도 구성도 전개도 내 취향이었다. 왠지 그림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역시 그랬다.
그림엔 한적하고 차분한 북유럽의 자연이 담겼다. 산과 바다, 항구 등 자연의 모습을 낮은 채도의 파스텔 톤으로 담았다. 역시 그림도 요란 떨지 않았다. 가장 좋은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안나 보베리의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과 3월 저녁 노르웨이에서의 습작'이었다.두 그림 모두 영화 <바닐라 스카이> 후반부에 나오는 하늘을 재현했다. 어쩌면 실제 하늘보다 더 바닐라 스카이 같은 하늘이다. 빛의 양에 따라 층층이 달라지는 하늘과 눈의 색을 물감으로 무심하게 표현했다. 요란스러운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퇴근길에 저녁노을로 바닐라 스카이를 만날 때가 있다. 마음이차분해진다.
Mountains. Study from North Norway
A March Evening. Study from North Norway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한 장면
나는 왜 전시회에가는가.감정의 퍼즐을 맞추려고 다니는 것 같다. 그림을 통해 스웨덴 감성이라고 예상했던 퍼즐을 찾으러 갔고 잘 맞았다.
책에서만 보던 사실을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유행했던 민족주의와 보수적인 기존 왕립 미술 분위기에서 벗어나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었다.『창조적 시선』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근대미술이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인상주의로 접어드는 시대의 그림들이기 때문에, 신에서 인간으로 시선이 집중되고그 시선이 다시 인간의 주관적 내면에 맞춰지던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범스칸디나비아 민족주의의 영향을 어떻게 받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예술은 예술가와 감상자의 교감 안에서 존재한다. 문학은 글로, 미술은 회화나 공예 그리고 디자인으로, 음악은 소리로, 영화는 영상으로 수단만 달리할 뿐이다. 각 분야의 예술은 각기다른 수단으로 같은 시대사조를 반영한다. 그리고 시대사조가예술 분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경이롭다. 예를 들어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불확정성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를 중첩시켜버리는 피카소의 입체파 큐비즘과 결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현대 미술은 왜 이렇게 난해한가 의문이었는데 현대 미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 시대가 어지럽고 난해하다. 양자역학의 물리학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고, 이 불확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논쟁중이다. 소설에서도 SF 장르가 유행이다. SF 장르는 현실과 지향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실에 존재하는 결핍을 짚어낸다. 구원자에게 기대는 방식인 판타지 소설까지 가지 않은 것은아직 희망적이다. 경제학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합리성을 믿지 않는다. AI는 현실과 가상을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전방위적 불확실성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