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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Dec 18. 2022

나는 죽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의미

세상이 나를 살인자로 몰아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날 믿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걸로 됐어.


누군가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한 대답이다.


나는 믿다.


 믿음이란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공백을 긍정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부정으로 채워 넣으면,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워진다.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사회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듯, 불신은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가로막거나, 기존 관계에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허비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생산적인 에 쓰일 수 있다.


 상대로부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가 원하는 가치를 일정기간 보여줘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가치와 적당한 기간은 관계에 따라 다를 테지만, 보편적인 관계에서 믿음에 필요한 가치는 진심이다. 상대가 진심이 없어 보이면 우리는 믿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상대의 진심 역시 내가 믿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상대 진심이어야 상대를 믿을 수 있고, 상대 믿을수록 상대의 진심이 보인다. 믿음은 진심과 직결된다.


날 못 믿으면 당신은 대체 누굴 믿어?

  오만한 생각이다. 내가 믿음에 오만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진심  의지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작하지 않았고, 목적지도 알지 못하는 인생에서 내가 꽉 잡을 수 있는 키는 의지뿐이다. 의지를 제외하면 인생은 불확실하다.


 은 물론 나에게도 진심을 다하려 한다. 에게 진심이 아니면서 남에게 진심일 순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진심이 아닌 결과는 거짓이고, 자신에게 진심이 아닌 결과는 허세다. 허세는 어김없이 거짓을 낳는다.

 

 당신을 믿다.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공백을 긍정으로 채우려 한다. 적어도 부정은 유보한다. 나는 당신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서로 속단해선 안된다. 우리는 모두 움벨트(자기중심적 세계, Umwelt)를 가지고 있고, 상호 존중할 의무가 있다.

 

 무조건 다 믿어버리면 문제없을까? 아쉽게도 믿음은 다다익선이 아니다. 관계마다 적당 거리가 있고, 거리마다 필요한 믿음이 있다. 가깝지 않으면 서로 깊게 믿을 필요가 없다. 반면 가까워 보여도 믿지 못하면 그 관계는 허울뿐이다. 믿음과 거리는 비례해야 한다.


 심지어 믿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는 진심은 아깝다. 배신은 믿음이 지닌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정작 줘야 할 사람에게 진심을 못 주고, 믿어야 할 사람을 못 믿을 수 있다.


 누군가 어떤 일을 남보다 쉽게 하고 이 왜 어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 그 에 재능이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에 재능이 없다. 그래서 가까이에 많은 사람을 두지 못한다. 많은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기는 힘들다.


 또한 긍정으로 채운 공백이 사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믿음을 거둔다. 타인나를 믿지 못할 때도, 거리다. 특히 있지도 않은 행간을 찾으려는 상대는 피곤하다.  상대를 위해서 거리를 재조정하여 균형을 찾아야 할 때다. 나는 타인에게 불필요한 행간을 둘만큼 부지런하지 못하, 시간아깝다.

 

 누군가 말했다. 의롭게 바른 길 걸어도 다 못 걷는 게 인생이라고. 덧붙여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기도 내겐 짧은 인생이다. 잠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이 흐다.


* 영감을 준 노래 : perfect world-arco

https://www.youtube.com/watch?v=sS2nRR_NwPs

 

* 표지 사진 : 유튜브 채널 「지식의 취향 : 인간관계에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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