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수용하는 법과 세상에 반응하는 법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을 이성으로 정제하는 과정이다. 상황에 대해 타인에게 감정으로만 반응하면 불균형이 발생한다. 모든 감정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타인에 대한 내가 했던 반응은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에 감정으로만 반응한다는 것은 나이를 잘못 먹은 결과다. 과하다. 내 기준에 타인을 감정적으로 대할 일은 많지 않다. 상황을 감정으로 대하기 전에 객관적으로 조망해 보면 대부분 별일 아닌 일들이다. 비대한 자아에 힘입어 상황을 사람으로 착각하여 과몰입하고, 타인을 오만하게 오판해서 서로는 서로의 선을 넘는다.
나는 세상을 수용할 때 상황과 사람을 구분한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이 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이 상황에 처해있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지 생각해 본다. 그 상황은 내가 아니었어도 닥칠 일이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그 상황에 내가 있었을 뿐. 그럼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면 과몰입을 방지할 수 있다. 삶의 예기치 못한 사건은 대부분 자연재해와 같다.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고 발생한다.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 삶의 시작부터가 우연이다. 만약 내가 말티재를 오르는 운전길에 낙석사고를 당한다면 그것은 나였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낙석사고가 일어날 때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하필 나였을 뿐이다. 우연한 일에 과한 의미부여는 필요 없다. 무심히 대한다.
한편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하고 싶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싶고 보이지 않는 타인의 선들을 넘고 싶지 않다. 그렇기 위해선 타인보다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타인과 엮였을 때 어쭙잖은 내 잣대로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기 수준만큼만 타인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타인에 대해 뭣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많은데 타인을 감히 어떻게 알까 싶다. 상황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타인을 단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넘는다.
상황과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거나 나이를 똑바로 먹지 못한 세상이 선을 넘는다. 아직 적정 거리를 두지 못해 선을 넘는 무례한 세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동시에 나는 세상을 수용하고, 세상에 반응하는 내 두 가지 원칙을 잘 지키고 있을까. 스스로를 모르는 만큼이나 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타인에게 인지하지 못하는 피해를 주고 있진 않을까. 누군가의 선을 넘진 않았을까. 적정 거리가 답인 걸 알면서도 내가 세상과 거리를 더 두지 못한다. 그 또한 내가 나를 모르고 선택한 일들의 결과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