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쵸 에 페페(Cacio e Pepe) 필승 레시피
재료가 간단할수록 성공하기 어려운 요리가 많다. 카쵸 에 페페가 그렇다. 이 파스타는 페코리노 로마노, 후추, 파스타 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거칠게 설명하면 파스타 면에 치즈 소스(면수+곱게 간 페코리노 로마노+ 후추)를 비비면 카쵸 에 페페다. 면수와 후추 그리고 곱게 간 치즈가 유화되어 크림 같은 치즈 소스가 나와야 성공한 카쵸에 페페가 된다. 유화가 핵심이고 어렵다. 4년 전에 3번 실패하고 최근 다시 도전했다. 육식맨이 빠니보틀, 나폴리 맛파아와 로마에서 정통 파스타 먹방을 하는 영상을 보고 파스타를 요리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했다. 까르보나라는 쉽게 만들 수 있는데 왜 카쵸 에 페페를 만들면 망하는가. 카쵸 에 페페에 달걀노른자와 관찰레만 추가하면 까르보나라인데 말이다.
https://youtu.be/UzhkMm7gV2w?si=n9WJxeH73KxyTTiL
위 레시피에서는 팬조차 필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저대로 성공한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겠지. 우리가 뜨거운 파스타 면에 면수와 곱게 간 치즈를 섞으면 치즈가 응고되어 껌처럼 된다. 반면 팬 온도가 낮으면 치즈와 면수가 잘 융화지 않아 치즈 알갱이국이 된다. 나는 치즈 껌과 치즈 알갱이국을 6번 만들었다. 분했다.
2-1 : 치즈를 곱게 갈아야 한다.
치즈를 곱게 갈지 않으면 치즈가 쉽게 응고된다. 정말 촘촘한 그리에이터가 필요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예 페코리노 로마노 파우더를 판다. 부럽다.
2-2 : 팬 온도를 충분히 식혀야 한다.
온도가 60도를 훌쩍 넘는 팬에 치즈를 넣으면 치즈의 단백질과 지방이 분리되어 치즈가 껌처럼 된다. 파스타와 면수를 섞은 후에 팬에 불을 끄고 2분 정도 기다렸다가 치즈를 넣는다.
2가지 팁은 흔하게 볼 수 있고, 위 방법대로 카쵸 에 페페를 도전해도 또 실패할 것이다. 2분 기다렸다고 팬이 적정 온도가 되진 않는다. 치즈가 껌처럼 될까 봐 낮은 온도의 팬에 치즈를 넣으면 치즈가 제대로 녹지 않는다.
성공하고 싶어서 여러 영상들을 뒤져 봤다. 알고리즘에 해외 유튜버들의 카쵸 에 페페 레시피가 계속 나왔다. 여러 영상들로부터 얻은 팁을 조합해서 비법을 찾았다.
3-1. 치즈가 다르다
https://youtu.be/yqIaJ_CvdEA?si=wOpZscTX4rqT76JJ
위 영상에선 이탈리아 치즈와 수입산 치즈가 다르다고 말한다. 첫째 수입산 치즈는 짜다. 이탈리아 셰프들만큼 면수에 소금도 팍팍 넣고, 수입산 페코리노 로마노를 50~100g씩 잔뜩 갈아 넣으면 파스타에서 짠맛 밖에 안 난다. 수입된 치즈가 더 짠 이유는 오랜 유통기간에 수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상에서는 페코리노 로마노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섞어 사용함으로써 짠맛을 중화하면서 풍미와 유화 가능성을 높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페코리노 로마노와는 다르게 이탈리아 현지 페코리노 로마노는 짠맛보다 풍미가 뛰어나다고 한다.
둘째 현지 페코리노 로마노가 카쵸 에 페페를 만들 때 면수와 잘 유화된다는 사실이다. 수입된 페코리노 로마노는 긴 유통 기간으로 인해 '단백질 경화'라는 물리적 성질(물성)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단백질 경화를 겪은 치즈는 유연성을 잃어 유화되기 어렵다. 우리는 치즈를 더 세심하게 요리해야 한다.
영상에 틀린 내용도 있다. 해외 마트에서 흔히 구매할 수 있는 페코리노 로마노 제품에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anti-caking agent와 같은 안정제가 포함되었고 이 첨가물이 소스가 부드럽게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치즈가 뭉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유럽 연합의 원산지 명칭 보호(DOP, 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 제도의 엄격한 관리를 받는 치즈다. 팩트 체크 결과 DOP 인증을 받은 현지와 수입산 페코리노 로마노의 성분은 동일하다.
3-2. 오일이 필요하다
https://youtu.be/M8DHsercsOM?si=76wnZt4YGV_cABA_
위 영상의 유튜버는 올리브오일과 버터로 면을 코팅한 후 치즈를 곱게 갈아 넣어 어느 정도 성공한다. 그리고 확실한 상공을 위해 이탈리아 미슐랭 레시피를 적용해 다시 도전한다. 업장에서는 옥수수 전분물을 약불에 끓여 젤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옥수수 전분 젤을 전동 블렌더를 이용해 곱게 간 페코리노 로마노 그리고 올리브 오일과 섞어 치즈 소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둔다.
이 방법은 싫다. 번거롭기도 했고 업장 특유의 포드주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오븐이나 수비드로 미리 조리해 두고. 겉만 바짝 익혀 나가는 업장 스테이크처럼. 업장의 포드주의 말고 어떻게 전분을 뽑아내야 할까.
3-3. 전분 : 전분이 부족하다.
1인분의 파스타면에서는 전분을 충분히 뽑아낼 수 없다. 반면 이탈리아 업장 레시피 영상을 보면 파스타면을 최소 2인분~보통 3인분의 면을 익힌다. 아니면 위에서 살펴본 대로 옥수수 전분을 따로 넣는다. 간편한 방법 없을까?
1인분의 면으로 전분을 충분히 뽑아내는 원팬 파스타 레시피도 있다. 하지만 면을 알덴테까지 익히는 동시에 면수를 적당히 남는 상태로 졸여야 하기 때문에 초보에게 쉽지 않다. 면과 팬의 종류, 불의 세기에 따라 가열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원팬 파스타는 경험에서 체득한 감각이 필요하다.
아래 영상처럼 널찍한 팬에 적은 양의 물로만 면을 익히면 전분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https://youtu.be/P6QWoOQMvE8?si=uFoZWfOk_5sEQCUo
하지만 이 영상에서 나온 만큼 면수에 소금을 넣고, 우리가 구매하는 페코리노 로마노를 갈아 넣으면 짜다. 카쵸 에 페페는 치즈와 면수를 많이 넣기 때문이다. 소금을 적게 5g만 넣어야 한다. 보통 파스타를 만들 때는 면 100g, 물 1l 기준으로 소금은 10g 넣는다.
아래 레시피대로 요리하면 팬 온도가 높아도 치즈가 쉽게 응고되지 않는다. 여러 영상의 팁들을 종합했다.
<카쵸 에 페페 1인분>
파스타(스파게티면) : 120g
물 700ml
소금 5g
페코리노 로마노 15g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15g
후추 5g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두 바퀴
무염버터 10g
1. 널찍한 팬에 소금과 물을 담고 불을 올린다. 물이 끓으면 파스타를 넣는다.
2. 그동안 페코리노 로마노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눈꽃소금 정도로 곱게 간다.
3. 천일염 소금 정도로 거칠게 간 후추를 약불에 볶다가 후추향이 올라오면 불을 끈다. (순서를 바꿔 통후추를 볶은 후 거칠게 으깨도 상관없다.)
4. 두 종류의 치즈와 후추를 잘 섞어 둔다.
5. 또 다른 팬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두 바퀴 정도 두르고 버터를 넣고 약불로 녹인 후 불을 끈다.
6. 알덴테로 익은 면(조리시간에서 약 2분 정도 덜 익히면 된다.)을 올리브유와 버터를 녹인 팬에 건져 올려 잘 섞는다.(면을 기름에 코팅한다는 느낌으로 비벼주면 된다.)
7. 팬에 면수를 한 국자 담아 코팅된 면에 물기를 준다.
8. [핵심] 코팅된 면이 담긴 팬에 치즈와 후추를 뿌린 후 빠르게 휘젓는다. 치즈, 후추를 한번에 뿌리지 말고 조금씩 추가하면서 농도를 맞춘다.
9. 크리미한 치즈 소스가 면과 잘 비벼질 때까지 계속 휘젓는다. 필요하면 면수를 조금 더 넣는다.(면수 양은 짜파게티 분말 스프 넣기 직전 정도면 적당하다.)
10.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