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国境の長い トンネル 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눈이 이쁘게 내렸다. 무소음의 설경을 보고 있으면 요란 떠는 세상과 달리 눈은 겸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찌든 마음이 정화됨을 느끼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떠올랐다. 이번 연휴 메인책은 『설국』이라는 생각과 함께 본가로 향했다.
유일한 계획은 곧 틀어졌다. 『설국』이 사라졌다. 본가에 있던 고전문학 전집을 어머니가 말도 없이 처분했기 때문이다.
"고전을 처분하는 집안이 어딨습니까." 볼멘소리가 나왔다.
어머니와 대화를 포기하고 방으로 처박혔다.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이 정반대인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화는 대개 무의미하다.
전에 읽었던 세온 작가님의 서평 도서 중 『설국』에 관한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떠올랐다. 밀리의 서재에 전자책이 있어 내 서재에 담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과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생애에 관한 시인 허연의 문학 에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의 배경지인 에치고유자와의 풍경을 담고, 『설국』의 장소인 동시에 『설국』을 집필한 다카한 료칸을 소개하며 시작되었다. 책과 눈 내리는 겨울밤이 연휴 한가운데서 서로 어울렸다.
저자 허연은 『설국』의 세계에 진심이었다. 그는 에치고유자와를 설경의 밤에 방문하기 위해 눈이 오는 겨울날 밤을 애타게 기다리며 『설국』을 읽고 또 읽었다.
“国境の長い トンネル 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이방인』과 함께 뛰어난 첫 문장으로 꼽히는 『설국』 의 문장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번역되는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 문장을 읽으며 무의식 중에 주체가 되어 시작부터 소설로 빠져들게 된다고 허연은 말한다. 의식하지 못했던 『설국』의 문학 기법들도 섬세히 설명해 줬다. 『설국』에 걸맞은 『설국』 해설서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 위를 한 발자국씩 딛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생의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성장 배경도 알게 되었다. '알기도 전에 느낀 고독이란 단어의 뜻'이라는 타블로의 가사(백야)가 떠올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두 살 때 아버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망한 후 이바라키에 있는 조부모 집에서 살았지만 일곱 살에 할머니가, 열 살 때는 누나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보호자였던 할아버지마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시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지속하긴 했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스로 말하는 '고아근성'은 바로 이때 형성되어 평생에 걸쳐 그를 지배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독을 너무 일찍 깨우친 소년 중에서 -
그는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자신은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삶을 살고 글을 썼다고 밝혔다.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가 생의 허무를 절대미로 승화한 문장들을 친절하게 나열해 준다.
적당히 피로해졌을 무렵, 문득 방향을 바꾸고는 유카타 자락을 걷어올려 한달음에 뛰어내려오자, 발밑에서 노랑나비가 두 마리 날아올랐다.
나비는 서로 뒤엉키면서 마침내 국경의 산들보다 더 높이, 노란빛이 희게 보일 때까지 아득해졌다.
- 『설국』 중에서-
아껴둔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불속에서 마저 읽어야겠다. 내일이면 요란한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 다 읽고 나면 새롭게 『설국』을 딛겠다는 예감이 든다.
* 사진 : 에치고유자와 료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