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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Jan 02. 2025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제정신이라는 착각』 서평

인간이 유일하게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죽음뿐이다. 불확실한 사실을 단언하는 태도가 이해 안 된다. 확실하지도 않은 확신이 타인에 관한 얘기라면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확신에 찬 사람들은 자신들의 확신을 진심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확신의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제정신이라는 착각』 알게 됐다. 제목보다 부제에 끌렸다.


부제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1. 확신과 망상의 경계

『제정신이라는 착각』은 인간이 확신을 갖게 되고 유지하는 원인을 뇌과학으로 설명한 책이다. 그리고 저자 역시 인간이 가지는 확신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저자 필리프 슈테르처는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다.


핵심 주장은 '인간의 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예측기계이기 때문에 인식적으로 비합리성을 띤다.'다. 인간은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한 채, 비합리적인 확신을 가지기 쉽다. 이런 확신 심해지면 망상이 된다. 망상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도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망상을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면 음모론이 된다. 개인은 망상과 음모론 안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소속감을 느낀다.


2. 비합리적 확신의 뇌과학적 원리

유익했던 부분은 인간의 오류 이론을 다룬 2장과 4장이었다. 인간의 뇌는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은 인지적 왜곡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시 인류의 뇌는 나뭇가지를 뱀과 착각하도록 진화했다. 조심할수록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진화한 뇌는 인지편향에 의해 확신을 갖는다. 인지편향으로 형성된 확신은 확증편향으로 강화된다. 확신이 망상에 가까워지면 확신과 반대되는 진실을 접해도 오히려 자신의 확신을 강화하는 역화효과가 나타난다. 위와 같이 책 흐름에 따라 인간의 비합리성을 나타낸 이론들이 나열되었기 때문에 상기할 수 있었다.   


3. 비합리적 확신이 유전된 이유

흥미로웠던 부문은 비합리적 확신이 현대에도 유리하다는 내용이었다. 뱀을 마주가능성이 적음에도, 현대인은 여전히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한다.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인지하는 유전적 리스크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까. 유리하지 않으면 이 특질이 유전되지 않았을 이다.

우선 저자는 가벼운 정신병과 예로 들면서 비합리적 확신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했다. 영국의 행동생물학자 대니얼 네틀은 정신증 경향과 작가, 예술가, 감독 등 창조적 직종 간 연관관계를 발견했다. 가벼운 정신병을 경험하는 사람은 창조성을 띠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름의 생존 방식을 갖는다.

다음으로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성선택설을 비합리적 확신이 번식에 유리한 근거로 제시했다. 이성을 지레짐작 포기하는 것보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데이성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확신하고 구하는 행태 이성과 맺어질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와 결을 함께 한다. 뇌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생존과 번식이다.


4. 비합리성에 대한 통섭적 설

가장 큰 특징은 인식적 비합리성에 대 통섭적 설이다. 저자는 망상을 설명하기 위해 뇌과학을 기반으로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심리학의 개념을 차용했다. 합리성을 설명할 때는 진리 대응론과 진리 정합론을 활용했다. 즉 저자는 뇌의 인지적 비합리성에 따른 인간의 비합리적 확신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논의 분야 뇌과학 한정책과는 달리, 이 책은 인식론에 대해 다방면으로 접근하고 예시가 풍부하기 때문에 딱딱하지 않았다.


5. 과학적 합리성과 공동체

저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인정과 공동체 내 다양성이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확신은 가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확신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역설한다. 모든 가설에 대한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 비판적 검증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과학적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과학적 합리성을 동력 삼아 진보했다. 우주 법칙을 푼 것만 같았던 고전물리학은 양자 역학을 위시한 현대물리학에게 자리를 내줬고,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고전경제학을 반박한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근대 이후 인류는 검증과 반박을 통해 당대 가장 그럴싸한 지식을 쌓고, 지식을 바탕으로 사상과 제도 만들어 공동체를 지켜왔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망상을 맹신하며 상대을 배척하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망상 음모론을 의사 결정의 근거로 삼아 상대편을 탄압하는 공동체 또한 전할 리 없다. 우리는 틀릴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모든 확신을 의심 가능한 가설로 남겨 두는 것이 진보와 공존의 출발점이다. 이제 그들을 조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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