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기본』 서평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무지는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은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실존적 무지에 처해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그게 인간이 철학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음을 쫓아, 고전 철학서를 읽으며 나는 위안받는다. 고전 철학서 안에서 누군가 이미 그 물음에 대해 고민했고, 비슷하거나 탁월한 답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 철학서는 대개 어렵다.
고전 철학서는 왜 읽기 어려운가. 철학자들은 독자에게 낯선 개념을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철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길 바라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한다. 철학자들은 친절에 비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철학자들이 하고 싶은 말들에 대해 부연설명까지 친절하게 한다면 평생 써도 다 못쓸 것이다. 그들은 넘치는 사유를 쏟아내기도 바쁘다.
철학자들이 미처 하지 못한 친절을 『철학의 기본』이 베푼다. 『철학의 기본』은 100가지 철학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100가지 테마는 인간, 지식, 도덕, 행복, 종교, 세계, 자연, 제도, 사회, 역사의 10가지 챕터 안에 묶였다. 모두 2500여 년 철학사 속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물었고 묻고 있는 테마다.
'이 책은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어도 철학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철학의 기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배경지식이 필요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저자인 일본의 철학자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철학자들이 사용한 낯선 용어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일례로 저자는 데리다의 '탈구축'이 생소하게 들리지만, 하이데거의 '해체'를 바꿔 말한 것일 뿐이라고 말해준다.(Basic 97 : 역사적 해체에서 탈구축으로 중에서) 이와 같이 독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소한 개념을 치환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설명이 조금 투박할지라도, 독자가 생소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데에 배경지식이 필요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친절한 각주다. 각 테마의 대표적인 철학자와 주요 개념 대해 각주로 설명해 준다. 소크라테스부터 패러다임까지 각주를 달아 줄 정도니 철학이 낯선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친절과 더불어 『철학의 기본』의 다른 장점은 독자를 철학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첫 번째 테마는 '철학 말고 철학하기를 배우자'(Basic1)다. 첫 테마부터 저자는 철학지식보다 철학하기를 강조한다. 칸트 역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으로서의 철학(philosophie)과 철학하기(philosophieren)를 구분하며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기라고 말했다. 저자는 100가지 테마에 물음을 던지고 각 물음에 대해 역사적으로 어떤 철학자들 간 논쟁이 있었고 쟁점은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해 준다. 그 후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고 독자에게도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이로써 독자는 자연스레 철학을 하게 된다.
책 구성이 통시적 흐름이 아닌 점이 아쉬웠다. 예를 들어 실존주의-구조주의-포스트 구조주의 순으로 철학 사조를 알 수 있게 책을 구성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철학하기'보단 '철학지식'을 중시하는 기존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왜 오카모토 유이치로가 10가지 챕터 안에 100가지 테마로 『철학의 기본』을 구성했는지 이해했다. 철학 쟁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는 철학 사조의 나열보다 테마별 구성이 더 적합하다.
독서는 저자의 아이디어를 독자가 자신만의 생각으로 재정리함으로써 완성된다. 기존 철학책들이 독자의 철학공부를 돕는다면, 『철학의 기본』은 여러분들에게 자신만의 철학하기를 권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