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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Jan 14. 2023

명품이 좋은 이유

마부작침(磨斧作針), 물취이모(勿取以貌), 무망지복(毋望之福)

저 놈이 아까부터 수상한데? 어어??!! 거봐 거봐~ 저놈이 빼가네~
저놈이 범인이네~


 동네 도서관 CCTV영상을 확인하면서 경찰 아저씨가 말했다. 가슴이 뛴다. CCTV 영상 안에서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가방 바깥 주머니를 열어 지갑을 빼가고 있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지갑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 체크카드는 사용내역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정지했고, 현금은 다행히? 치킨값 정도밖에 없었다. 체크카드, 신분증, 대출증 등을 재발급받으러 다니는 것이 제일 큰 피해였다. 가을이라 다행이라고 위안 삼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범행 장소에 무조건 다시 나타난다는 범인을 알아본 뒤 지구대에 몰래 신고하기. 문제는 CCTV상 도둑놈 얼굴이 너무 희미하다는 것. 도둑놈이 다음날 내 옆에 앉아서 공부도 알아채지  정도였다. '놈은 애초에 CCTV가 무용지물인 것을 알았나? 치킨 맛있게 먹어라.' 혼잣말을 끝으로 도둑놈 잡는 것을 포기했다. 본가 책상 서랍에 있던 다른 지갑을 가지고 도서관을 다녔다.


 계절이 두 번 정도 바뀌었을 쯤이다. 도서관 출입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근무자 분 나를 붙잡으셨다. 도둑놈을 잡았다담당 경찰관의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내가 오며 가며 매번 인사를 해서 도난사건이 기억난다고 하셨다. 도둑놈은 다른 도서관에서 또 지갑을 훔치다가 꼬리를 밟혔단다. 나와는 달리, 도둑놈과 수사 당국 모두 포기하지 않은 결과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역시.


합의 의사는 없습니다. 강력 처벌을 원합니다.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을 들은 담당 경찰관은 다른 피해자들도 같은 생각이라며 잘 알겠다고 하셨다. 그들도 재발급받으며 분노했을 것이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놈은 갔지만, 의문은 남았다. 왜 내 가방이었을까. 개방형 열람실엔 다른 가방들도 많았는데. 현금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갑에 치킨값 정도 들어 다는 것을 알았다면 훔치지 않았을 텐데. 도벽이 있지 않는 한.


 지하철에서 우연히 답을 찾았다. 어떤 사람이 나와 같은 가방을 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똑같지 않았다.  가방은 가방 너비에 비해 끈과 가방 본체를 이어주는 금속 고리 작았다. 가방끈이 항상 쭈굴쭈굴하게 접혀있었다. 보기 좋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불량인가 보다 생각했다. 반면에 그 사람 가방끈 고리와 딱 맞아떨어져 보기 좋았다. 쌈짓길에서 충동적으로 산 베이지색 가죽 가방이 어느 명품의 짭이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가방이 어느 명품의 짭이라는 것을 몰랐고,

도둑놈은 가방이 짭이라는 것 몰랐.


 이듬해 여름쯤 법원로부터 도둑놈이 맡긴 공탁금을 찾으러 오연락을 받았다. 서류를 작성하고 며칠 뒤 십만 원 정도 입금되었다. 치킨이 참치가 되어 돌아왔다. 이래서 명품명품 하나보다. 역시.


* 표지 사진 : https://www.wikitree.co.kr/articles/644299

* 뒷광고는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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