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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Feb 25. 2023

도망친 곳에 쾌락은 있다.

독서로 세상과 화해하기

양보해주기 싫어 앞차와의 간격을 줄이려고 굳이 굉음을 내며 풀악셀을 밟는 운전자.

행패를 부리다가 말리던 시민이 상사 지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납작 엎드리는 주취자.

천박한 갑질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득바득 확인하누군가의 을.


세상의 이기, 비굴, 저열에 어느 정도 치이다 보면 더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환멸이 온다. 김영민 교수가 말한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만의  가야 한다. 잠시 도망쳐야 한다. 나는 책이 보고 싶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달만 책을 읽고 싶다. 이왕 처박힐 거 그랜드 하얏트 고층에서 한강 도심 전경을 시선 너머에 두고 읽으면 제일이겠다.


처박혀서 읽는 책은 쾌락을 준다. 한 권의 책은 미지를 밝혀주면서 나를 새로운 미지의 문 앞으로 안내한다. 사회 모든 이념은 시스템에 대한 가치관 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경제학 책을 본다. 주류 경제학 전제 조건인 이성주의를 의심하는 행동 경제학을 살펴보니, 인간 행태의 근간인 줄 알았던 자유의지가 위태롭다. 자유의지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서 특히 화두다. 뇌과학에서는 신인류가 시공간을 초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 현재 인류는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예측, 물질, 시공간, 의식의 경계를 들여다본다. 혼돈이론, 쿼크, 사건의 지평선, 뇌과학과 AI의 자의식 등 진실에 근접하기 위해 각자 최선의 사실을 내놓고 있다. 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과학, 뇌과학, 진화 심리학 각 분야가 불확실성이라는 큰 테마로 묶다. 책과 책사이를 건너다니다 보면 동시대 학제 간은 물론이고 고전과 현대의 통섭적 흐름이 느껴진다. 뇌과학이 던져준 자의식에 답하다 보 데카르트의 유아론이 찾아온다. 나는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접하거나 인식 어질  쾌락을 느낀다.


안개처럼 떠다니던 내 생각 우아하게 정제된 문장을 만났을 때독서는 쾌락을 선사한다. 정제된 문장이 주는 두 번째 쾌락은 주로 고전을 읽다가 경험한다. 시간정제한 것이 고전이기 때문이다. 특히 철학 고전에서 정제된 문장을 자주 만난다. 본질을 추구하는 철학에서 다시 본질을 추린 것이 철학 고전이니 어련할까. 


고전 살아있다. <골든아워>에는 거북선처럼 위태롭치열이국종 교수의 삶이 있다. 순간을 살면서도 죽음을 염두에 두며 본분을 다하는 하이데거의 본래적 삶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부유하는 생각을 정제하려는 발버둥이다.


주경-야경과 함께 한 달 처박혀 있으면 입력은 책, 출력은 글뿐일 것이다. 전달받은 문명을 다듬어 전달한다. 이것은 인류필멸성본질적인 방법이다. 나만의 방에서 읽고 쓰는 동안 내 소우주는 일부 허물어지고 다시 견고해진다.


처박힌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이기, 비, 저열 등 인간의 자발적인 부조리 조금 더 미니어처가 되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요리를 안 해도 다. 커피는 하루 세  그림 그리듯 물 부어 내려야지. 산책은 인적이 드문 밤에 할 것이다. 다가 여름 일주일이라도 처박히면 물린 어금니와 구겨진 미간이 조금은 풀릴까. 열심히 벌어야겠다.

 


*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 서동현의 휴(ft. 기리보이)

https://youtu.be/RtnJ2t27Rj4?si=i6vMyYBFxvPP4vl1


* 영감을 준 음악 : W&Whale의 오빠가 돌아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uLMbiB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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