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경 May 06. 2023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는 안녕하십니까.

후회 없이 남아주기를


귀에 꼭 맞는 노래가 세상에 많이 남아 있을 텐데 평생 못 만나면 어쩌지

  
새내기 시절의 감성은 넘쳐흘러 축축했다. 노래를 찾아서 듣다 보니 인디음악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힙스터 감성이나 홍대병은 아니었다. 그게 쿨 해 보이던 시절이었지만, 그 또한 부심이라는 생각에 오그라들었다. 대중가요 중 내 취향인 노래는 굳이 찾지 않아도 들려오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아도 접할 수 있었다. 인디든 대중음악이든 듣고 싶으면 듣는다. 메시지가 와닿으면 곱씹는다. 다양성을 가로막는 편견까지 들이기엔 인생이 짧다. 타블로 가사처럼 "이제 내게 언더와 오버의 의미는 never understood and always overthinkin'."

 

내가 노래를 수집한 방법은 싸이월드 BGM검색이었다. 꽂혀있는 노래를 BGM으로 설정해 둔 미니홈피를 방문하면, 홈피 주인이 설정해 놓은 다른 노래들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이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애타게 찾던 퍼즐 조각 같은 노래들이 있었다. BGM은 그 사람의 결 들려줬다.

 

결이 비슷한 지인들에게 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했었다. 주로 계절에 따라 노래를 듣기 때문에 걷기 좋은 봄날을 걸을 때 듣기 좋은 노래라거나 가을이 갔지만 아직 겨울은 오지 않은 때의 노래, 연말연시 온기가 꺼진 뒤 봄이 오기 전 듣기 좋은 노래 등 그때 감성에 따라 어울리는 노래들을 물었다. 그들은 느낌적인 느낌을 잡아내어 용케도 적절한 곡을 추천해 줬다. 간편한 방법이었지만 결이 비슷한 사람들은 흔치 않고, 그들과 멀어지거나 그들의 결이 달라져 지속되지는 않았다.


한 곡 한 곡 소중히 채운 노래들은 재생될 때마다 각자 고이 접어놓았던 감성들을 펼친다. 나에게 음악처럼 쉽게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것은 없다. 음악에서 비롯된 감상은 청각을 통해 비정형적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수용자에게 선사하는 심상도 주관적이다. 감상자마다 자유롭게 감정을 불러오기 때문에 능동적 수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음악은 수용자의 심상을 즉각적이고도 자유롭게 불러온다.

 

쇼펜하우어는 음악만이 피상적이고 외형적인 세계를 초월해 우리를 본질로 인도해 주는 예술형식이라고 평했고, 니체는 개인이 음악을 통해서만 개인을 뛰어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고 극찬한 것처럼 음악은 특정 시공간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즉시 하는 순간이 많을수록 하루가 만족스러운데, 음악 감상은 손쉽다. 음악 듣기와 더불어 음악 수집도 쉬워졌다. 구글 알고리즘이 에픽하이를 통해 김사월, 최유리, 허회경을 순서대로 알려주었다. 특정 시점에 듣고 싶은 음악을 세상 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테니까.


새벽 한 시에서 두시를 향해 가던 노량진 금요일 밤이 생각난다. 그때쯤에는 소주, 맥주를 거쳐 게맛살과 함께 청하를 마셨다. 감성이 이제야 적당히 무르익었다는 듯 동생은 붕어를 부러워했던 김광석 노래이야기(1996)를 재생하곤 했다. 열린음악회에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들릴 때면 새내기 시절 M과 자탄풍(자동차 탄 풍경)으로 활동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웃찾사 개그맨을  흉내 내며 8차선 도를 건고, M은 도로 고깔콘을 머리에 쓰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 먼저 생각해내지 못 내가 진 것 같아 아쉬웠다. M의 아들은 어느덧 다섯 살이다. 멋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것도 나중에 M군에게 말해줄 예정이다.

 

글 쓰려고 동생에게 그때 들었던 앨범 얘기를 하니, 오늘은 오랜만에 김광석 노래이야기(1996)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겠다고 한다.



* 김광석 노래이야기(1996)

https://www.youtube.com/watch?v=yp3Dh0t8N2E

붕어가 부러워요.


음악과 함께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은 해질녘 노을처럼 펼쳐진다.

노량진 잘 다녀오길.




* 표지 사진 : 김광석 공연('94.08) 홍보엽서  

https://blog.naver.com/eco_marketer/221068286477






작가의 이전글 셰프는 아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