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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Apr 22. 2023

셰프는 아니지만,

요리에 진심입니다.

살맛 난다. 세상에 맛있는 것은 넘치고, 배는  테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내 식사를 방해할 만큼 중요한 전화는 없다. 사고를 제외한 재촉은 호들갑이다. 급한 건 내가 아닌 당신이다.라고 생각하는 나는 식사에 진심이다. 가족을 위해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스레 만든 집밥이 (음식에 별뜻이 없는) 식당밥보다 맛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요리 실력은 자부심을 채우고도 남, 나는 맛있는 집밥으로 컸다. 입직하고 본격 요리를 해봤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도 요리를 잘하고 다. 


내게 요리를 잘한다는 기준은 해당 음식에 보편적으로 기대되는 맛을 균일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다. 찜닭은 기름과 단짠 양념이 적당히 익은 닭고기에 잘 배야 한다. 몽골리안 비프는 겉은 살짝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소고기가 단짠 소스와 잘 어우러져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쏟아져야 한다. 샤토브리앙 미디움 레어는 담백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안심임에도 불구하고 퍽퍽하거나 질겅거리면 고기야 미안해ㅠㅜ 해야 한다. 중화 고기볶음밥은 밥알이 돼지기름에 알알이 코팅되어, 먹을 때 알타리 김치가 생각나야 한다. 어떤 맛이 핵심인지는 혀가 바로 안다. 문제는 그 맛을 매번 균일하게 는 것이다. 균일한 맛을 내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 레시피와 동일 재료를 준비한다.


처음 도전할 때는 가능한 한 레시피와 같이 재료를 준비해서 맛의 기준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기준이 바로서야 그것을 토대로 핵심적인 맛을 찾아가기 수월하다. 재료의 종류도 같아야 하고 상태도 최대한 유사해야 한다. 초행길에서는 감을 믿으면 안 된다. 초보에게 재량은 사치다.


돼지기름이 필요한 레시피인데 삼겹살 대신 전지를 쓴다면 식용유라도 추가해주는 센스가 필요하고, 싸다고 후지를 넣으면 퍽퍽한 다른 요리가 된다. 스테이크는 부위별로 굽기 정도를 달리해줘야 하며, 부채살은 가운데 근막을 제거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색감용 홍고추는 청양고추를 대체할 수가 없다. 재료는 최대한 레시피에 맞춰 준비한다.



2. 재료의 역할 대해 생각한다.


재료가 해당 레시피의 킥인지, 단순히 색감을 좋게 하는 것인지 역할을 알 생략도 대체도 다. 어차피 음식 맛은 재료의 화학 분자에 따라 정직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재료의 역할과 비중을 알면 생략하거나 다른 재료로 대체도 하면서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


 맛술은 돼지고기 잡내를 잡는 데 쓰기 때문에 신선한 돼지고기로 요리할 것이라면 생략해도 된다. 생강청이나 생강분말로 대체할 수도 있다. 갈비찜 넣는 배는 연육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갈아 만든 ldh 음료로 대체 가능하다. 중화 고기볶음밥은 냉장고에 당근이 없어도 맛을 낼 순 있지만 대파가 없으면 마트부터 다녀오거나 간장 계란밥으로 만족해야 한다. 몽골리안 비프에 곁들일 파가 없으면 꽈리고추로 대체하면 되지만, 전분이 없다면 부채살 스테이크로 메뉴를 수정해야 한다.



3. 조리과정의 목적 잊지 않는다.


목적을 알고 조리해야 균일한 맛을 내기 수월하다. 레시피는 대개 조리시간을 기준으로 되어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간편해서 좋 보이지만 정확하지 않다. 같은 조리시간을 따르더라도 재료 상태, 조리 환경에 따라 다른 결괏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리 과정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기준으로 조리해야 한다. 


파스타면은 브랜드나 면의 종류(스파게티, 리카토니 등)에 따라 익히는 시간이 다르다. 포장지에 적혀있는 완전 익힘(벤코토) 소요 시간보다 약 1-2분 정도  익혀야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 알 덴테 면으로 먹을 수 있고,  그보다 2분 먼저 꺼내서 팬에서 마저 익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방법은 직접 먹어보면서 체크하는 것이다. 저 정도 시간이 경과했을 때 면을 하나 건져 먹어 보고, 약간 휘어지긴 하나 심지가 살아 있을 때(아체르보) 팬으로 옮겨서 2분 정도 익히고 다시 한번 먹어보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무분별한 유튜브 레시피대로 파스타를 9분 동안 익히는 것이 아니라, 심지가 약간만 남아있을 때(알 덴테)까지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스테이크 레스팅의 목적은 겉표면의 잔열로 심부를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레스팅은 구운 시간의 절반동안 고기를 식히는 것이 아니라, 심부 온도가 상승을 멈출 때까지만 해야 정확하다. 


조리 과정의 목적을 알아야 유연해질 수 있다. 레시피를 생각 없이 따라 하 것이 아닌, 왜 하는지 파악하면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고, 순서를 바꿔도 되는지도 자연스 알게 된다. 순서는 조리과정 목적과 역할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목적은 맛을 내는 거니까.  하는지 알면 돌발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레시피의 조리 시간이나 순서는 수단 뿐이다. 목적에 집중하면 조건이 달라졌을 때 적용가능한 보편적인 방법이 보인다.




집중한다. 중요한 조리과정 몰입한다. 팀 페리스가 강조한 충격의 순간이다. 그 순간 몰입해서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균일한 맛 내기에 실패다. 요리를 할수록, 그 밖의 일상에서도 일의 목적과 역할을 곱씹는다. 의미와 중요 다. 이걸 왜 하는 거지? 이게 중요한가? 나에게 무슨 의미지? 이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이 정도로 쓸 일인가? 의식적으로 목적을 조망하지 않아서, 무의식 중에 수단에 잠식된 건 아닌 경계한다.


작년부터 까르보나라를 해 먹고 남은 흰자 수플레오믈렛 만든다. 수플레오믈렛은 부드럽고 폭신하고 달달해야 하는데, 매번 모양잡기에 실패하여 폭신하지 않아 계속 도전하고 있다. 수플레오믈렛이 폭신해질 때, 나도 본질에 더 가까워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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