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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Jul 16. 2023

부족한 것은 시간뿐이다.

내게 장마는 하루키 문학이다. 벽지 안쪽에 곰팡이가 쓸었음이 분명하숙집에서 꿉꿉하게 읽은 하루키 문학이다. 마지막 여름 방학 장마에는 바람  비가 리곤 했다. 친구 M 내게 <상실의 시대>를 권했다. 중앙도서관에서 려 온 책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빗소리가 들어오게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대충 때운 점심이 소화되기도 전에 누워책을 봤다. 저녁 약속까진 시간이 넉넉했으므로 매일 자다 읽자다 읽었다. 같은 흐름에 을 맡겨 초조하면 표류, 여유를 잃지 않으면 유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M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룸메이트 돌격대를 보면 왠지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돌격대에게 정이 갔다. 이번 장마<1Q84> 덴고의 삶을 들여다봤다. 맥주 한 병과 저녁을 먹고 돌아와 소설을 쓰고 책을 읽다 잠드는 덴고의 삶과 다르지 않은 삶을 나도 살면서도, 읽는 내내 덴고부러웠. 달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삶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잘 읽힌다. 바 마른 화분에 물을 준 것 마냥 책이 흡수다. 연준의 양적완화를 지지하는 경제 서적, 철학자들의 고민거리를 공유하는 철학책, 1950년대 뉴욕을 그린 소설 빈틈없이 일상을 적신다. 읽을 맛이 난다. <워킹데드> 칼잡이 미숀의 장검처럼 눈이 먼저 활자를 치고 나간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감각만으로 이미 즐겁다. 망설일 필요 없다. 책은 좀비 떼처럼 가득하니까. 부족한 것은 시간뿐이다. 


달을 온전히 바라고 싶다. 쭉.


* 커버 출처 : unsplash, tokyo night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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