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싶었다. 나에게 본질적인 가치란 타인 시선이 없을 때도 유효한 가치다. 애매할 땐 죽음을 떠올려 당겨오면 된다. 죽음은 관점을 본인에게 집중시키며 불필요한 허상들을 지워주니까.그랬더니자유만 남았다. 인류사 역시 자유 쟁취의 발자취 아닌가.
일상을 자유로 채우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에게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정신적, 물리적, 물질적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정신적 자유란 본래적 삶을 사는 것이다. 본래적 삶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 시선이 아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살 수 있다. 읽고 쓰면서 평생 찾아갈 생각이다.
다음물리적 자유는 내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적 의미의 자유다. 건강해야 하고, 구금되어서는 안 된다. 불의의 사고는 통제할 수 없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을 잘 챙기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 물질적 자유란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원을 교환할 수 있는 자유다. 생계 위협을 받지 않는 상태로 정신적, 물리적 자유를 보호할 경제력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당장 우리의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밥벌이다.직장인 대부분은 9to6 꼼짝없이 회사에 묶여있어야 한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이야기다.비극을 예감하며어느 어린 날 생각했다. '인생 대부분을 밥벌이를 위해 허비할 텐데, 밥벌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되면 좋겠다. 내가 잘하는 일이면 교환가치도 높겠지? 그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라고.
나 역시 밥벌이와 자아실현이 괴리된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똑바로 몰랐다.생계를 위협받지 않고 정신적 자유와 물리적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나는 9to6 시간을 팔아 돈을 사고 있다.돈은 자유롭게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자유를 팔아 돈을 얻다니 이런 본말전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자본이든 노동이든 투입해서 소득을 얻지 않으면 자원과 교환할 수 없다. 지금주어진 자유라도잃지 않으려고 나는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다.밥벌이에 압도되어 반쪽짜리 자유마저침해당한다면내삶은 또무의미해지고 옅어지겠지.
"그래도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누군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가삶의 대부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허비한다는 현실이, 또 이 현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나는 슬프다. 출근 전면도는 오늘 하루도 제도권 안에서 문제 일으키지 않고 부품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소박한 소망이라도 뭐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많은사람이부품질한 결과를 통해서 기계가 의미 있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출근일 면도는 슬픈 의식이다.글의 시발점이었다.
어떡해야 할까.하고 싶은 것을 밥벌이로 삼아서 하고 싶을 때마다 하든가. 또는 마음을 달리 먹어서 지금 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여기든가. 그것도 아니면 밥벌이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경제력을 갖추든가. 셋 다 아니라면 면도를 마치고 쇳덩이 같고 큰 굴레 안에서 죽도록 뛰어야 한다.
* 표지사진 :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1599~1652)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