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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Oct 29. 2023

"다시 말해, 예술은 무용합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서평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타인에게 관심이 있거나, 타인이 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거나 둘 중하나에는 해당되어야 타인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가는 허구를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즉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의 간극을 좁힌다.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빠졌다가 나오면, 그들에게 관심이 생긴다.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길래 작품 속에서 그런 허구 세계를 구축했을까. 더불어 일상 속 그들 모습도 궁금해진다. 그들이 쓴 산문집이끌리듯 찾아본다. 흥미를 끌기 위한 허구적 장치 없이 그들이 편하게 건네는 말을 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와 산문을 쓸 때 쓰이는 글쓰기 근육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머릿속에서 영화를 보는 듯 읽는 소설과는 달리, 산문집은 인간극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다르게 쓰였으니 다르게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폴 오스터는 소설 『달의 궁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무 살 언저리 주인공 포그는 여름날 장판 바닥에 오른쪽 뺨을 데고 누워 덜덜거리는 선풍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삶을 산다. 우연이 연달아 덮치는 인생의 파동에 몸을 맡길 뿐이다. 바람 없는 장마기간 방바닥에 누워 하루키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예전 내 모습을 회상하며 읽었다. 『달의 궁전』에서 빠져나오니 폴 오스터를 엿보고 싶어 졌고, 그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세상은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몸은 세상에 있다.'라는 작문노트 메모로 시작하여, 폴 오스터가 영감을 받은 작가와 문학 작품에 대한 애정이 담긴 평론으로 이어진다. 그가 엿본 카프카나 사뮤엘 베게트의 등 예술가의 세계가 책에 담겨있다. 카프카를 예로 들어 예술가는 굶주리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모든 것을 갈아 넣다고 말했다. 카프카는 예술적 허기를 채우려는 욕망이 매우 컸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문학의 금자탑이 될 수 있었다고 평했다. 책에는 작품 밖 사회에 대한 인식도 담겨 있다. 1999년 뉴욕시박물관 전시작품 검열을 규탄하는 시위 연설문이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움을 근간으로 하는 예술 작품 전시정부가 개입하면, 이는 더 이상 예술의 문제가 아다. 정치가 예술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완곡히 타일렀다. 이 외에도 뉴욕 풍경이나 9.11 테러, 콜롬비아 대학 시위 등에 대한 에세이나 칼럼도 수록되어 있어 일상 속 뉴욕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글은 아스투리아스 왕자 문학상 수상 연설문이다. 예술에 대한 그의 관점이 직접 담겼기에 단어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연설문에서 폴 오스터는 예술 무용론을 주장한다. 예술은 딱히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쓰는 것 외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예술은 아무런 목적이 없다.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무용한 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다울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의 진정한 가치라고 폴 오스터는 말한다.


그의 예술 무용론 실존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실존주의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 다르게 목적이 없다. 어느 날 산에 툭 던져졌을 뿐이다. 타고난 목적도 사명 띤 숙명도 없다. 끊임없이 우연들이 덮치는 『달의 궁전』 포그의 삶과 일치한다.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예술과 인간은 비슷하고, 인간은 목적 없 예술을 추구하며 종적 차별성을 갖는다. 여기에 더해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인적 고유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우연이 넘치는 삶 속의 개인이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개인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세상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여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고유성을 찾은 개인은 시지프스가 되어 각자의 돌덩이를 기꺼이 짊어지고 다시 산에 오를 수 있다. 니체 예술을 개인이 힘의 의지로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하는 모든 방식이라고 정의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책의 첫 문장에 실존주의를 덧입히면, '내 몸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졌지만, 세상 역시 내 머릿속에 있다.'가 된다. 인간은 무용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무용함을 위로받는다. 무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 의미를 추구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탐닉할 뿐인지도 모른다.


Edward Hopper(Manhattan Bridge)1925–1926

* 뉴욕을 사랑하는 또 다른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자 내가 제일 아끼는 에코백 디자인이도 하다.


예술의 가치는 우리를 지금 여기에서 구출해내는 데 있다.

 페루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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