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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Oct 21. 2023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3가지

캐나다 리자이나 생활기

살다 보면 우연히-돌이켜보면 필연인 듯-가치관바뀔 때가 있다. 전환점을 지나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물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 삶의 동력까지 변한다.  전환점은 십수 년 전 리자이나에서 보낸 가을과 겨울 찾아왔다. 밴쿠버에서 소형기로 환승도착한 리자이나는 중부 내륙에 있는 평온한 도시였다. 넉넉한 평수의 단독 주택 서로 멀찌감치 들어서 있었다.




1. 그곳은 추웠다.

겨울은 더욱 평온했다. 체감온도 영하 38도인 날에도 도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정상운영 되었다. 홈스테이 주인 토드 아저씨는 나에게 은행강도 복면을 권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콧속얼었다.

토드 아저씨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내가 반삭발을 하고 왔어도 흠칫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벌이를 하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학교 선생님인 토드 아저씨는 집에 와서는 충전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토드 아저씨가 어느 날 아침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말고 버스로 다녀오라고. 그때 그곳에서 이십 대 초반인 나는 괜찮다고 했고, 토드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의 두꺼운 장갑을 빌려 주다. 그날 나는 자전거를 버리고 올 뻔했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눈은 더 쌓였고, 집에 오는 길에 자전거 바퀴는 헛돌았지만, 아저씨의 자전거를 길바닥에 매어 두고 오기엔 민망했다. 자전거를 도난당했다고 하고 변상해 준다고 할까? 아저씨에게 소중한 자전거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 추면 아저씨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과묵한 아저씨 말을 들을 걸. 거듭 후회하며 집에 도착했다. 느껴지는 아저씨 시선마주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진중한 사람 말을 귀담아듣게 됐다.

체감온도 영하 8도 어느 날, 주인 메기 아줌마는 날씨가 이제 풀렸다며 나에게도 산책을 권했다. 오랜만에 걸음마다 여유를 담았다.


2. 그곳엔 여유가 있었다.

리자이나 운전자들은 100미터 전방에 있는 보행자를 보고 서행해 오다, 보행자가 먼저 건널 수 있게 정지했다. 인적 드문 새벽에도 그들은 여유가 있었고 그것을 나에게 베풀었다.

아줌마는 나를 laugh yoga에도 데려갔다. 사람들은 원을 그리며 모여서 다 같이 함께 웃는 연습을 했다. 다 같이 웃어 볼까요? 하면 큰소리로 하하하 웃어야 했다. 맥락은 없었다. 상황이 어색해서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리자이나의 여유를 직접 즐기기가 낯설었다.

주말에 요양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요양환자의 활동 능력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갖춰 있었다. 연말 분위기가 가득한 어느 날에는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할머니 지시대로 빙고판을 지다. 다 함께 쿠키와 케이크를 먹었다.


3. 그들은 자유로웠다.

따뜻한 머그컵우유 한잔이 잘 어울리던 날 오후였다. 아줌마를 따라 쿠키를 반죽하며 캐나다에 대해 여쭤보았다. 한국에서는 성적순으로 문과는 법대, 이과는 의대에 가려고 하는데 캐나다에서는 그런 전공이 무엇이냐고. 아줌마는 내 질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기 흥미나 적성에 맞춰 전공을 고르는 것 아니냐. 나는 재차 설명했고, 아줌마는 질문 요지에 끼워 맞춰 대답하자면 요즘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그나마 인기가 다고 했다. 그곳엔 자유가 있었다.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

요즘 여기는 취미와 취향마저 정답이 있고, 입시는 메디컬 고시가 되었는데 캐나다도 이젠 변했으려나 모르겠다. 반죽에 적당한 중력분 '더 뿌리라고?' 되물을 정도의 초코칩을 얹어 구우면 시중에 판매하는 쿠키보다 촉촉하고 맛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만.




사계절을 다 느끼고 오지 못해서인지, 코 끝과 귀 감각 살아있을 정도의 추위가 오면 그때 그곳 생각이 난다. 동네 도서관을 다녀올 때 들렀던 숲 속 공원, 아저씨 아줌마와 함께 빌려 본 비포 선셋, 드립에 제한이  family guy,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야 등을 내준 검은 고양이와 함께 그곳에 다른 방식다양한 모습으로 사람이 산다.

전환점 지난 후,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주서도 원리 으려 하는 마당에, 사람이 만들어낸 일에 당연한 것은 생각보다 적고 원래 그런 것은 . 

그리고 경주장 밖 산책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영하 8도의 날씨가 포근하고, 여유 넘치며, 좀 더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넉넉한 평수의 단독 주택들이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미국에 견주어보면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이곳도 여유와 자유가 점점 들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는 낯설 것이다. 추위와 laugh yoga처럼.



리자이자 대학교 캠퍼스와 홈스테이하던 동네 풍경
매번 자전거로 오가던 길

 

* 당시 많이 들었던 노래 : Daniel Powter - Bad Day

https://youtu.be/eN_SVw-yyhA?si=yLFG5uDzaGcbeenr

힘이 되어주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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