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이겨서 뭐 할려고?
Y양과 서로를 알아가는, 소위 ‘썸’을 타기 시작한 뒤 약간의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흔히 데이트 코스라고 말하는 뭐 그런 것들을 두 사람은 이것저것 해보고 있었죠. 퇴근 후 잠깐 만나서 카페 가기, 주말에 함께 영화 보기, 주말에는 교외의 데이트 스폿에 가보기, 기타등등기타등등.
만남을 거듭하면서 저는 Y양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술 보다 커피와 차를 더 좋아한다는 것,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만화나 게임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것, 잘 웃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 등등을 알게 되었죠.
물론 저는 게임이 인생에서, 유희에서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었기에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둘 다 영화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고, 맛집 탐방도 좋아하고, 교외로 드라이브 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데이트를 계속하던 어느 날, 휴일에 두 사람은 영화관에 갔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영화관에는 ‘오락실’이 있는 경우가 많죠.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은 고전 명작부터 DDR이나 펌프 등의 리듬 액션 게임, 각종 ‘총싸움 게임’ 등등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영화 시간까지 제법 시간이 남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Y양이 말하더군요.
‘L군 게임 좋아하죠, 영화 시간까지 여기서 게임 같이 하는 건 어때요?’
게임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는 것이 어떠냐는 Y양의 배려.
당연히 저는 그 호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이런저런 게임을 했습니다. ‘비행기 게임’에서 날아다니는 적들을 함께 격파하고, ‘총싸움 게임’에서 달려드는 좀비를 때려잡고, ‘다른 부분 찾기 게임’에서는 이게 다르네 저거는 아니네 하면서.
그렇게 이런저런 게임을 함께 하던 도중, Y양은 대전격투 게임을 가리키며 저것도 한번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것은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명작 격투 게임, 철권 시리즈의 최신작이었습니다.
나름 게임을 잘하는 모습으로 멋진 모습을 어필(?) 중이라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Y양과 대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캐릭터를 선택한 다음, 과장 좀 섞어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 Y양의 캐릭터를 두들겼습니다. 게임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승자는 당연히 저였죠.
자, 어떻습니까? 제가 이렇게 게임은 좀 하는 사람입니다. 대충 이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Y양을 바라보려던 찰나, 저는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Y양의 표정은 말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있었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었죠. 재미있게 ‘놀이’를 하려고 상대방이 잘하는 것에 어울려 줬더니, 함께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안 하면서 초보자 이기겠다고 날뛰는 모습을 보였는데 좋은 표정이 나올 리가 없겠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이후의 흐름은 데이트라 말하기 매우 어려운 무언가였다는 것 만 밝혀두는 바입니다.
천만다행으로 ‘까임’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후 Y양은 한동안 이때 일을 여차할 때마다 언급하면서 저를 놀려대며 앙갚음(?)을 했다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이 일을 언급하면서 놀리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다지 다행스럽지 않은 것은 그 이유가 이것 이상으로 저를 놀려먹을 수 있는 발언을 제가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겠고요.
왜냐하면 결혼하고 얼마 뒤, Y양이 저에게 임신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왔을 때 제가 ‘엄청난 발언’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발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젠가 적절한 시기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