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남편과 계약직 공무원 아내-07

여성, 계약직, 그리고 공무원

by 글쟁이게이머 L군

개인적으로 몇 없던 장점이 사라지는 비극(?)을 겪기는 했지만, Y양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저와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억으로는 진즉 ‘까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남의 수를 채우고도 계속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주말이 되면 약속을 잡게 되었죠.


네, 흔히 말하는 ‘썸’이라고 부르는 상황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본격적인 ‘연애’로 들어가기 전단계 이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해 진짜로 알아가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미연시처럼 이야기하자면, 이제 슬슬 ‘호감도 쌓기’에 돌입할 수 있는 단계라고나 할까요?(사진은 ‘썸썸편의점’)


그리고 Y양이 공무원이기는 한데,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아, 딱히 속이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이야기는 했었는데, 나머지 조건에 압도되어서 제가 까먹다시피 했던 것뿐이니까요.


흔히 사회적으로 공무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는 좋게 표현하면 고용보장, 나쁘게 표현하면 ‘철밥통’이죠. 범죄라도 저지르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


반대로 계약직이라는 단어 안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너무나 강합니다.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파리목숨. 실적 조금만 낮아져도 바로 불안해지는 입지 등등.


이 둘이 조합된 계약직 공무원.


공무원인 만큼 이런저런 복지나 연금 등에서 혜택이 있지만, 계약직이라 정년보장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안한 고용 상태로 다녀야 하죠. 물론 그런 만큼 연봉에서 혜택을 주는 것이 맞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일단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Y양은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Y양의 타고난 겸손한 태도 때문에 표가 잘 안 나긴 했지만, 결국 낭중지추. 진짜배기 능력은 뚫고 나오는 법입니다(사진은 ‘수박게임’)


제 눈에는 그런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은 여러 가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기타 등등의 요소들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분들은 사회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저 또한 사회의 편견과 현실의 벽 때문에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던 능력 있는 여성분들을 많이 봐왔기에 Y양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Y양에게 진심이 되기 시작했던 것은.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같기도 합니다만, 사실 저처럼 스스로를 게이머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중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하가 넘쳐나는 곳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냥 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어서 커뮤니티에 발 들였다가, 넘쳐나는 여성비하와 혐오, 엄청나게 부풀려진 별것 아닌 사건과 지독한 편견, 개그로 포장된 조롱과 희롱 등등에 낄낄거리며 빠져드는 사람을 저는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귀남이’니까요.

아들 귀한 집에서, 위로 누나를 여럿 둔, 너무나도 소중한 막내아들. 그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도전하는삶을 원했던 ‘누군가’의 앞길을 막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성을 향해 쏟아지는 편견과 혐오를 게임 관련 일을 하면서 매일 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진짜로 운명이었던 것 같네요. 중압감 속에서 게임을 버팀목 삼아 살아가던 ‘귀남이’인 저와, 주변의 도움 없이도 꿋꿋하게 혼자 힘으로 유학도 다녀오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온 ‘당찬 여성’ Y양의 만남은.


남아선호사상을 정면으로 다뤘던 92년 드라마 ‘아들과 딸’. 당시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 보고 니 이야기냐고 놀려댔던 사람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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