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남편과 계약직 공무원 아내-12

이제부터, 사귀는 사이

by 글쟁이게이머 L군

큰 조카와 저 사이에 벌어진 ‘건프라 사건(?)’이 마무리되고 얼마 뒤, 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백’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였습니다.


학교 축제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망신당하고 군대로 도망쳤다, 단톡방에서 내 마음 받아달라고 외쳤다가 단톡방과 함께 인간관계도 폭파되었다, 공원 바닥에 하트 모양 촛불 켜놓고 기다리다가 신고당했다…


고백 잘못했다가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애에 익숙한, 혹은 인기가 많은 남자라면 보는 순간 얼추 각이 나온다고 하던데, 평생을 인기가 없었던, 더해서 인기를 얻기 위한 노력조차 별로 하지 않았던 저 같은 오덕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그런 말을 뭐 하려 하냐, 그냥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사귀게 되는 거고 결혼도 하고 그런 거지,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괜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서로가 정식으로 교제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는 꼭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나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상태에서 만나는 상황이라면 말이죠.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과 직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


사실 이게 게임이라면 너무 간단한 일입니다.

수많은 미연시에는 ‘공략법’이라는 것이 있고, 또 정확하게 ‘호감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맞춰서 ‘공략대상’을 정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는 선택지를 고르고, 필수 이벤트를 보는 것에 성공하면, 짠, 공략 성공. ‘그리고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001.jpg ‘전설의 나무’ 아래에서 고백하면 행복해진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는 현실에도 많기는 합니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실제로는… 뭐, 그렇죠?(사진은 ‘도키메키 메모리얼’)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조차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정확하게 캐치해서, 두 사람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말을 한다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 연애까지 초보라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그린라이트’였지만, 상대방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기에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겠죠.


002.jpg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여서 결국은 포기하게 되고, 진짜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조차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되고, 그래서 또다시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이런 나름 민감한 상황 속에서 제가 선택한 길은 심플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Y양이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죠. 물론 그냥 뻗대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Y양에게 보여주었고, Y양 또한 저와의 만남을 결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어설프게 나대다가, 조급함에 서두르다가 너무나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약간의 시일이 더 흐르고, Y양에게 조금 힘든 일이 있던 어느 날. Y양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많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바로 달려가서 Y양의 고민을 들어주었죠.


그리고 그날 이후, 저희는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계속


003.jpg 힘들고 지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군가요? 아마 그 사람이 지금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사진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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