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남편과 계약직 공무원 아내-11

막간 / 아이들 장난감이 왜 이리 비싸?(하편)

by 글쟁이게이머 L군

비싼 건프라를 대충 빨리 마구 만들어서 주변을 당황시킨 큰 조카였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재밌게 하니까 함께 논 것뿐이고,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게임이랑 장난감 좋아하는 철없는(?) 삼촌은 결심했습니다.

‘제대로 노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단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그래서 주말에 큰 조카와 함께 외출을 했습니다. 목적지는 바로 ‘건담베이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건프라를 중심으로 각종 프라모델 등을 판매하는 전문점이죠.


60976863_2394285330619764_4101520723447644160_n.jpg 저처럼 ‘조립식’에 추억이 있는 분이라면 그냥 찾아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건담베이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큰 조카의 눈빛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건프라를 인터넷 주문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처음 와본 이런 전문 매장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던 것이겠죠.


매장 곳곳에 쌓여있는 수많은 건프라 박스들, 그리고 그 건프라를 완성시켰을 때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수많은 ‘작품예시’들은 큰 조카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곳에서 저는 큰 조카에게 선물로 사 줄 테니 골라봐라. 단, 가격은 5만 원을 넘겨선 안된다, 대신 구경하고 고르는 시간은 얼마든지 주겠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긴 고민과 구경의 시간을 보낸 뒤, 큰 조카는 3만 원, 2만 원 정도 하는 HG 제품을 2개 골라왔습니다. 네, 원래 만들던 것보다 훨씬 저렴한 제품들이죠.


그러는 사이에 저는 매장에서 초보자용 건프라 공작 키트, 먹선용 팬, 아트나이프, 그리고 초보자용 건프라 가이드북을 하나 구매했습니다. 물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제가 만들 건프라도 적당한 것을 하나 골랐죠.


건담 베이스에는 그 자리에서 건프라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조카와 함께 그 자리에 앉아서, 간단하게 건프라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부품이 정확하게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법, 니퍼로 런너 자르는 요령, 자른 부분에 남는 플라스틱 조각 깔끔하게 제거하는 법, 먹선을 넣어서 디테일을 추가하는 법 등등을 알려주면서 말이죠.


물론 저만의 스타일인지라 마니아 분들이 보시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분명 즐겁게 건프라로 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조카에게 약간의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 사준 저렴한 건프라들을 지금 내가 알려준 방식으로, 부품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가면서 만들어 보라고요. 그리고 전부 다 완성한 다음, 이전에 만들었던 비싼, 하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충 만들었던 것과 비교를 해보라고.


큰 조카도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더군요.


IMG_0997.JPEG ‘프로’가 만드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놀이’니까요. 그냥 내 손이, 내 여가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공을 들여서, 무엇보다 즐겁게 만들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큰 누나를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저와 같이 사 왔던 2개의 저렴한 건프라로 무려 한 달간 집중해서 열심히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큰 조카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물어봤죠.


‘무언가 다르다’라는 것이 느껴졌느냐고.


큰 조카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요. 비싸도 대충 만든 것과, 저렴하지만 공을 들여서 완성한 것의 차이를 말이죠.


놀이는 놀이일 뿐입니다. 장난감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접근하느냐, 거기서 무엇을 느끼고 또 얻느냐는 체험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저 또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몰입과 집중, 노력과 애정이 물건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도 말이죠. 더해서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이때의 경험 덕분인지, 지금도 큰 조카에게 저는 ‘좋은 삼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도 나름 큰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더해서 제대로 된 ‘놀이’는, 어지간한 교육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계속


IMG_2617.JPEG 이런 건담과 건프라에 대한 애정은 결국 가족여행의 일정까지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것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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