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 아이들 장난감이 왜 이리 비싸?(중편)
엔트리 그레이드-하이 그레이드(HG)-리얼 그레이드(RG)-마스터 그레이드(MG)-퍼펙트 그레이드(PG)
건프라는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제품군이 나누어집니다.
복잡하고 오덕스러운 이야기는 빼고 요점만 말하자면, 왼쪽으로 갈수록 저렴하고 조립이 쉬운 제품군, 오른쪽으로 가면 고가에 조립도 어려운 제품이죠. 저렴한 제품은 1만 원가량인 것도 많지만, 비싼 물건은 수 십만 원이 넘는 것도 제법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등학생 이하의 연령대이거나 이제 막 입문한 사람이라면 저렴한 물건부터 시작할 것을 추천합니다. 사실 저 등급들의 이름만 봐도 딱 느낌이 오지 않나요? ‘엔트리’는 이걸로, 실력이 ‘마스터’라면 이걸로,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당연히 큰 조카도 엔트리나 HG 정도의 물건을 만들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쪽은 만 얼마짜리들도 많고, 비싼 물건도 그렇게 올라가진 않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카 녀석, 무려 MG를 만들고 있던 겁니다. 그것도 대략 10만 원 정도 하는 물건을 말이죠. 거기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제 입장에서는 당황을 넘어서서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건프라 같은 조립식 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도구가 필요합니다. 부품을 깔끔하게 자르기 위한 전용 니퍼,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전용 먹선 팬, 커팅 나이프, 사포, 기타 등등이 말이죠.
그런데 큰 조카는 최소한의 준비물도 갖추지 않고, 맨손으로 마구 파츠를 때면서 대충대충 만들고 있었습니다. 큰누나 내외는 건프라가 뭔지 전혀 모르고, 큰 조카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벌어진 대참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성인도 며칠은 진득하니 붙어서, 집중력을 발휘해서 만들어야 하는 물건을 대충대충 만들고선 바로 다음 물건을 사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던 거죠.
이게 왜 ‘대참사’냐, 기껏 장난감 하나 가지고 왜 호들갑이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요리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가 음식 만들고 싶다면서 한우 사달라 하고, 큰 맘먹고 사줬더니 그걸 맹물에 넣고 끓여대고 있는 모습을. 제가 보기에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이 터진 거였습니다.
거기다 실력 있는 사람도 한참을 걸려서 만들 것을 대충대충 만들어서 치워버리고 다음 거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2중 참사이기도 했죠. 앞서 말했던 요리의 예처럼, 이제 식칼 처음 잡아보는 사람이 회 떠보겠다며 귀한 돌돔을 계속 요구한다면 요리사분들은 기겁을 하실 겁니다.
실제로 당시 큰 조카가 대충 만들어버린 건프라의 리스트를 아는 건프라 마니아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그 귀한 것들을!’ 하면서 머리를 부여잡더군요. 좋은 물건이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아깝게 소모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돈 이전의 문제죠 이건.
왜 하필 골라도 그런 비싼 물건을 골랐느냐고 큰 조카에게 물어보니, 친한 친구가 그걸 만들고 있어서 자기도 그거면 되겠구나 싶어서 사달라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도 함께 놀면서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만들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다더군요.
주변에 건프라에 대해 아는 어른은 없고, 재미는 있어 보이고, 잘 모르니 일단 비싼 거 골라보고, 부모는 그냥 장난감인가 보다 하고 사주고, 그냥 되는대로 만들어 버린 다른 것도 사달라고 조르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상황은 나빠지기만 하는…
개인적으로는 큰누님 내외가 아이의 취미생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이야기 할 상황은 아니니 일단 넘어갔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애들 장난감 사주다가 기둥뿌리… 까지는 아니더라도, 큰누님 내외 지갑에 가시적인 타격이 생기거나, 큰 조카의 동심에 생채기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요.
그리고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아주 간단하면서, 큰 조카도 만족하고 또 큰 누님댁의 지출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말이죠. 그게 뭐였냐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