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학습의 분리
세계적으로 수준급인 게임산업의 규모를 갖추고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게임도 적지 않게 내놓고 있고, 더해서 E-SPROTS의 발상지이며, 지금도 세계최고의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자타공인 게임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이나 게임에 대한 인식도 수준급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긍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게임 셧다운제’라는 황당한 제도가 나왔다가 사라진 것이 그다지 오래전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왜 이런 보기에 따라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놀이 그 자체를 혐오랄까 비하하는 문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산업에서 ‘산업’이라는 부분은 돈이 되니까 좋은 것이지만, ‘게임’이라는 부분은 공부에 방해되는 시간낭비에 불과한 나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되는 환경부터 해외와는 다릅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보통 부모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게임기를 통해서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 순수하게 ‘놀이기구’인 게임기를 가지고 게임을 접했고, 자연스럽게 게임기를 취급하는 것으로 게임과의 거리감을 교육시키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게임기를 사주는 부모가 해외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었습니다. 대신 ‘학습용 컴퓨터’를 사주는 케이스가 훨씬 흔했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컴퓨터로도 게임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을 PC로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학습과 놀이의 경계가 미묘해진 상태로 게임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입니다. 부모님 한테는 영어공부한다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혼났다는 이야기는 나이 있는 한국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흔한 에피소드죠.
그리고 요즘에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을 겁니다.
이유도 비슷하죠. 게임기는 ‘놀이 전용’이니 사주기 주저되지만, 스마트폰은 필수품이고 공부 등에 꼭 필요하니까요.
저는 일단 이 부분부터 인식을 달리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최대한 게임기라는 전용기기로 즐기고, 그것을 내려놓으면 게임은 끝, 이제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태블릿과 같은 스마트 기기들로 ‘다른 짓’을 하는 케이스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동은 우동 전문점, 돈까스는 돈까스 전문점에서 먹으면 더 맛있듯이, 게임도 전문기기에서 즐기면 더 재미가 있으니까요. 이왕 노는 것 더 밀도 있게 놀 수도 있고 말이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