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롤러코스터

by Toomuchpink

위태로워 보이던 그는 결국 몸살이 난 것 같았다. 아플땐 정말 혼자면 서러운데.. 비도 세차게 오고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으며 일을 했다니 걱정이 됐다. 야근을 하려 했는데, 책임감에 노트북만 이고지고 그가 있는 집으로 갔다. 불닭을 신명나게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 즐거워하던 생각이 나서, 불닭을 끓여와 잠자는 머리 맡 옆 책상에 앉아 불닭을 먹었다. 내 나름의 응원이자 그를 위한 먹방쇼였다. 아직 한 달도 안되긴했지만 엄마집에서 살면서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다보니 사실 꽤 불닭이 먹고 싶었다. 그만큼 기대했는데, 너무 오래 끓여 면에 힘이 없고 맛이 없었다. 책상 한 켠에는 책들과 가지런히 정리된 노트가 있었다. 내가 종종 일기를 쓰던 노트 가운데 볼펜이 꽂혀있었다. 일기를 쓰고 있다더니 거짓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펼쳐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을까. 늘 자기 연민과 회피하는 그의 모습에 지쳤던 나인데, 그런 자신의 세세한 모습들을 마주하며 여러번 넘어지고 일어나고 하는 일상들이었다. 정말 처절하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이마에 열을 재보고 꿈지럭 대는 모습을 살피는데 옷이 땀에 다 젖어있었다. 냄비 받침으로 쓰던 주방용 키티 수건 (키티 얼굴이 냄비 밑에 그을려 상처난 듯한 꼬질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버리지 못했던)으로 열을 내려주고 집을 나서려다 그가 샀다던 홈캠을 발견했다. 싹을 끊어내려고 헤어질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날 그간의 편지에 당신을 믿지 못하는 나를위해 샀다는 홈캠이었다. 그땐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파서 큰일나면 어떡해 오늘 하루만 지켜보지 뭐’하는 마음이 들었다. 설치를 시도하는데 잘 안됐다. 빨간 불이 지속적으로 깜빡이는데, 가장 편안한 공간인 침대에 그걸 설치해두고 오자니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뭔데, 우리 사이가 뭐라고.


데려다준다니 택시를 태워준다느니 하는 그를 한사코 거절하고 나오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을 올려다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전화가 오더니 애플펜슬을 가져가라고 했다. 몹시 귀찮음을 느끼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비를 흠씬 두들겨 맞아 서늘해진 도로를 거닐며 귀에 에어팟을 쑤셔넣었다. 하필 늘 그와 데이트 할 때 듣던 익숙한 우리의 노래가 나왔다. 아 이노래 뭐지? ‘constant’. She likes spring but i prefer winter 그 노랜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튼 그 노래중 하나였다.


타이밍 좋게 올라탄 버스에는 엄마가 늘 듣던 박혜경의 ’비‘가 들려오고, 버스 기사는 노래를 흥얼 거린다. 인생은 참 이렇게나 반복이다. 영원한 오르막도 영원한 내리막도 없이 오르고 내리고, 앞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던 내 롤러코스터는 아직도 여전히 초고속으로 무중력 구간을 달리는 중인가보다.


이제는 내 집이 아닌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위에 누으니 나도 모르게 확 편안함을 느꼈다. 난 이곳이 불편한데 왜 편하지. 어쩌면 집이 편안하다는 건, 더이상 꼭 해야할 일도 가야할 곳도 없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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