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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흐르는 친절: 공항에서 시작된 이야기

낯선 이를 따라가서 그 집에서 하룻밤 잤다

몇 해 전, 나는 미국을 여행하던 중 작은 공항에서 경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짙은 안개로 뒤덮였고, 모든 항공편은 무기한 지연되었다. 나는 스탠바이 티켓을 가진 승객이었기에 항공사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고, 인근의 모든 호텔은 만석이었다. 시간은 점점 늦어갔고, 낯선 땅에서 나는 막막함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한 중년의 여성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호텔을 찾지 못해 이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묵으실래요?”


그녀의 뜻밖의 제안에 나는 놀랐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절박함에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의 집은 공항에서 멀지 않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는 내게 편안한 침실을 내주었고, 아침에는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사례하고 싶다고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친절은 물처럼 흘러야 하니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세요.”


그 말은 내 마음 깊이 각인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관광객이 넘치는 도시 비엔나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안내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기억이 특히 또렷해진 건 며칠 전,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 궁전 앞에서였다.


거센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고, 전차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산을 펼쳤지만, 한 가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두 아이와 함께 서 있는 부모. 그들은 우산도 없이 비에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도움을 제안하는 일이 때로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다가가 말했다.


“제 우산을 아이에게 씌워드릴까요?”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온 가족이었다. 나는 우산을 아이에게 씌워주었고, 추위에 떨고 있던 아이를 위해 내가 두르고 있던 따뜻한 숄을 풀어 그의 몸을 감싸주었다. 아이는 금세 환하게 웃었고, 그 미소는 내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그 순간, 오래전 미국 공항에서 만난 그 여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친절은 물처럼 흘러야 하니까요.”


그녀의 작은 친절이 내 삶을 바꾸었고, 이제 그 물줄기는 또 다른 이에게로 이어졌다. 내 작은 손길이 비에 떨던 아이에게 따스함을 전할 수 있었다. 친절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야 한다. 서로를 적셔주며,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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